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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여! 중생구제의 현장으로 돌아가자PD수첩 ‘큰스님께 묻습니다’ 시청기

MBC PD수첩이 대한불교조계종 권승들의 비위를 두 차례에 거쳐 적나라하게 취재 보도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교계 내에서 보도되었거나 회자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충격적이었나 보다.

방송에서 다루기 전에 불교계 내에서 자정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이 이뤄져 불조를 욕부였고,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으며, 당사자들은 더 할 수없는 창피를 당했고, 불교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줬다. 참으로 지혜가 부족했음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반야(지혜)의 종교에 지혜가 없음은 이미 그 생명력을 잃었음이다. 94년 개혁정신을 다시는 언급할 수 없게 되었으며, 국민과 불자들은 출가자의 돈과 권력에 대해 최근 유행어가 된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요구할 것이다. 아니 PVID, 즉 ‘영원히’를 넣을지도 모르겠다.

지눌스님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 하셨다. 94년 개혁이 미진했던 것은 돈과 권력을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게 폐기’하지 못해 중생에게도 돌아가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엔 두 번의 실수를 하지 말고 그 여지를 없애야 한다.

돈의 문제는 가톨릭과 비교하면 좋을 듯하다. 출가자 모두에게 지위고하 평등하게 세간의 최저임금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최저임금이니 무소유의 의미로서도 괜찮다고 본다. 나머지 돈은 모두 학교, 병원 등 구체적 중생 구제 사업에 투자할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모든 권력을 해체하고 포교 전진기지인 지역사암연합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공동체를 실현하는데 역량을 쏟아야 한다. 혹자는 본사중심을 주장하지만 본사는 현상유지에도 벅차다. 지역사암연합회는 포교의 최전진기지로서 중생구제의 구체성을 담보하는데 적절하다.

종단 구분 없이 사업을 벌인다면 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의 여러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포교사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그리고 해체된 종단 권력의 인력을 지역활동가로 배치한다면 저비용 고효율로 중생구제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불교 역량을 중생구제라는 본연의 일에 총집중하자는 말이다.

출가자를 ‘스님’이라 한 것은 스승 사(師)자의 음가 ‘시’나 ‘스’에 ‘님’자를 붙여 부른 좋은 의미였다. 봉건불교국가에서는 지도층과 우수한 인재들이 출가자였고 또 출가자는 국가 경영 전반은 물론 군사 정보에까지 ‘실질적 스승’의 역할을 했다. 백성과 나라는 이들의 스승다움에 ‘스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의 선비가 스님의 역할을 대신했고, 현대에 와선 그 역할이 보다 전문화ㆍ집중화되어 종교인들의 역할은 더욱 축소됐다. 오늘날 종교의 역할은 기능적으로 보아도 매우 줄었다. 교리적 측면에서는 정보화 시대로 오히려 신자들이 스님 못지않게 교리를 잘 이해하게 됐다. 영성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적으로도 여러 종교인들의 일탈에서 보듯, 종교인의 위치와 역할이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그나마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오랜 역사에 걸쳐 상속된 많은 유형무형의 문화재를 전승ㆍ발전시키는 기능적 역할이 하나 더 부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관련 기술적인 맥이 끊어져 대다수 문화재의 보수를 일반인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보니 ‘스님’이란 호칭이 더더욱 무색해지고 있다.

간화선 수행자든 위파사나 수행자든 염불선 수행자든 모든 수행자는 수행처를 오직 중생구제의 현장에 둔다면, 수행에 대한 시비도 없어지고 만 중생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남악회양은 마조에 기왓장을 갈았고, 4조 도신은 좌작병행을 실천했고, 백장은 노동을 성문화했지 않은가.

수행자들은 오히려 중생구제의 현장에서 각 수행을 점검하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생구제만을 화두로 할 때 교학도 관념에서 탈피해 구체적화 되고 화두 또한 구체화 된다.

사원경제는 날로 궁핍해지고 있다. 몇몇 권승들의 돈놀이 보도는 그 일부이고, 현실은 사찰 유지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이만한 유형무형의 자산이라면, 이를 유능한 사람들이 경영한다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중생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권승들의 ‘윤회 쇼’에 사찰은 유지마저 힘들게 황폐화 되고 있다.

백장정신을 이어 받아 생산불교, 현장불교, 일하는 불교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과 함께하는 지역공동체, 불교학교와 함께하는 산학공동체, 도시에 맞는 도시공동체, 지역과 도시의 협력공동체 등 구체적 중생구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중생구제의 현장에 모든 역량이 집결한다면 교와 선이 구체화 되고, 수행과 포교가 하나가 되며, 이와 사가 하나가 된다. 물론 출재가도 하나가 되어 비로소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다. 물적인 중생구제와 함께 심적인 중생구제도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했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도 끝내, 부처님께 참회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이번 PD수첩 보도의 당사자들은 되도록 빨리 그에 맞는 행보를 하길 바란다. 모든 것엔 타이밍이란 게 있다. 지혜가 많은 자일수록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야 불조에 누를 조금이라도 덜 끼치는 것이며, 본인을 속이지 않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비참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자기 자신과 남과 불조에 큰 죄는 짓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도 이를 기회라 생각지 말고, 다시 한 번 부탁컨대, 이 기회에 돈과 권력을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여 오직 중생구제 사업에만 쓸 수 있도록 법제화 하자. 자꾸 반복의 여지를 남기는 것은 무지한 일이니 반불교적인 무명의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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