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이미령의 사람이 經이다
낙태, 시키거나 조장 방임하는 자 모두 유죄불교와 낙태-불교는 낙태 이전에 무엇을 말하는가_3
이 글은 계간 <철학과 현실> 2018년 봄호에 '불교와 낙태'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불교포커스는 <철학과 현실>의 도움으로 3회에 거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철학과 현실>에 감사드립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면, 그는 악업을 저지른 자가 된다. 그런데 불교의 대표적인 계율관련 대승경전인 <범망경>에는 다음과 같이 폭넓게 살생이라는 악업의 행위자를 정의하고 있다.

“불자들아, 그대는 직접 죽이거나, 남을 시켜서 죽이거나, 방편을 써서 죽이거나, 칭찬을 해서 죽이게 하거나,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주문을 외워서 죽이는 그 모든 짓을 해서는 안 되니, 그 어떤 죽임의 인(因)과 연(緣), 방법 등의 살생업을 지어서 생명 있는 온갖 것을 고의로 죽이지 말아야 한다. 보살은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과 따라주는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목숨을 보살펴야 하니, 산목숨을 제멋대로 하거나, 산목숨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면, 이것은 보살에게 가장 무거운 죄(바라이죄)가 된다.”

직접 제 손으로 산목숨을 해치지 않더라도 남으로 하여금 죽게 만든다거나,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산목숨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당연하고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고 부추기는 행위를 하는 모든 이들이 똑같이 살생의 악업을 짓는 자라는 것이 불교 입장이다.

낙태는 어머니 태에 깃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일, 즉 살생이다. 그런데 여성이 자신의 몸에 깃든 태아를 온전히 보살피지 못하고 포기하려 든다면, 그 여성에게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뜻으로 봐도 좋다. 무엇보다 함께 책임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 남성도 낙태라는 살생업을 여성이 짓게 만드는 데에 일조를 했으며, 여성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 가정이나 사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성이 낙태라는 살생의 업을 짓도록 주변에서 내몬다면 주변 사람들 또한 살생의 업을 함께 짓는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사진=픽사베이.

임신을 한 여성이 낙태를 원하는 경우가 경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붓다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는 승가가 지식인 그룹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의학적 지식을 지녔거나 혹은 주술의 힘을 지닌 스님들에게 낙태하는 방법을 물어서 그 방법대로 유산을 시도한 경우가 제법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낙태에 ‘성공’하지만, 불행하게도 임신부까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벌어졌다. 결국 출가수행자의 행동규범을 규정한 율장에서는 스님들의 이런 행동을 법적으로 규제하기까지 하는데, <십송률> 제2권에 따르면, 태아를 죽이기 위해 낙태법을 써서 낙태하면 ‘바라이죄’에 해당한다. ‘바라이죄(波羅夷罪, 산스크리트어로는 파라지카 parajika)’란 출가수행자가 승단에서 내쫓기는 가장 무거운 처벌로서, 살생 등의 중죄를 범한 경우에 적용되는 조항이다.

두 사람이 사랑하여 관계를 맺고, 여성의 몸속에 태아가 깃들고, 열 달 동안 사랑으로 고이 품어서, 따뜻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양육하는 일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가장 바람직한 환경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을 갖출 수가 없어서 낙태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는 제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니 낳기만 하라고 종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 엉겁결에 관계를 갖고 두려움 속에서 주변에 전혀 알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낳은 뒤에 몰래 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유산의 아픔을 달래고, 낙태당한 태아의 혼을 위로하는 천도재를 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태아영가천도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특히 ‘수자공양(水子供養)’이라는 이름으로 천도재가 열린다.

그런데 여성들이 낙태한 뒤에 사찰에 와서 천도재를 지니는 것은 대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이미 죽임을 당했는데 천도재를 지냈다고 해서 되살아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건 어린 생명을 죽인 자의 자기위안과 종교계의 수입이 맞물린 이벤트가 아닐까 감히 말씀드린다.

불교계에서 직접 여성 불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여성들의 자기비하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느낀다. 여자로 태어나서 불행하고, 한스럽고, 뭔가 전생에 죄를 지어 여성으로 태어나서 이 모양인 것이니, 그냥 이번 생을 그 죄 갚음이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 불자들의 인생관이다.

어차피 속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여성의 삶이니, 내 몸에 깃든 태아를 쓸어버린 아픔과 그 형벌도 내가 다 받고 간다는 것이 많은 여성들의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낙태하는 죄 하나쯤 더해진들 어떠냐는 생각이다. 이 지독한 숙명론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남자는 태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여자는 태아에 대해 자신의 구겨진 인생을 투영한다. 이런 생각들이 낙태를 쉽게 생각하고, 낙태 이후 천도재로 위안을 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임신한 여성이 자발적으로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낙태를 했다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269조 1항의, 일명 낙태죄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낙태율이 OECD 국가 중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다고 한다. 종교인구 비율이 무척 높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낙태죄가 존재하고, 낙태율이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불교계가 낙태에 대해 또렷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사실 불교계로서는 좀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다. 세상에 낙태를 찬성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태아의 어느 단계를 생명의 시작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의견의 차이는 그만두고라도 이 세상에서 낙태를 찬성하거나 권장하는 종교는 없다.

기독교와 같은 이웃종교가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은 생명의 권리가 인간이 아닌 신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 역시 낙태에 반대하지만, 생명의 권리가 부처에게 있거나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끌려가 받게 될 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생명을 해치는 일은 옳지 않고, 유익하지 않고,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즉, 악업이다. 악업은 자신에게 해롭고, 남에게 해롭고, 자신과 남 둘 다에게 해롭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악업을 짓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서 악업을 짓지 않도록 인도해야 한다. 하지만 악업이든 선업이든 그것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업을 짓는 자의 판단에 따른다. 처음에는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거나, 짧은 안목으로 섣불리 판단을 내려 업을 짓는다 해도, 그 업의 결과가 어떤지를 헤아려서 같은 업을 또 지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철저하게 그 사람의 몫이다.

자신의 의지로 지은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라오며, 그 과보를 받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짓는 데에는 그 한 개인만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도 똑같이 책임을 갖고 있으며, 공동체는 한 개인의 업에 따른 과보의 영향권에 함께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불교는 말한다. 세상은 촘촘한 인연의 그물로 짜인 관계의 연속이니까. 그렇다면, 한 여인의 낙태행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불교는 낙태를 반대한다. 다만, 낙태에 관해서 그저 무조건 절대로 “하지 마!”라고 부르짖는다고 해서 뭐가 해결되었냐고 되묻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 아닐까 한다.

그건 죄가 되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소중하니까 당신의 의지대로 낙태하기 이전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권고가 종교계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낙태한 뒤에 죽은 아이의 영혼을 천도하는 것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욕정의 해소와 생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일깨우는 것이 종교의 의무이리라. 아직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어떻게 계도할 것인가의 문제, 행여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도 안심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 임신에 관해서 남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책임을 지게 하도록 하는 법률의 강화 등이 더 먼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낙태를 논하기 이전에 생명을 철학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이미령의 다른기사 보기
불교포커스 기사를 후원해주세요
  •            
후원하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