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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승대덕 스님이 그립다_정찬주
앞서 '설조스님께 드리는 공개편지'를 통해 불자들의 가슴을 울린 정찬주 작가가 설조스님 단식 29일째인 7월 18일, 한국불교 어른부재의 현실을 꼬집는 기고를 보내왔다.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7월 14일 촛불법회 발언에 앞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설조스님의 모습.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일전에 너무 답답하여 허정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허정스님은 대뜸 나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 심정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상경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허정스님은 설조 노스님 곁을 외호하고 계시는 스님이다. 허정스님의 타는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28일째 단식 중인 설조 노스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나도 그러한데 스님이야 가까이서 뵙고 있으니 시시각각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이다.

경허스님의 주석처였던 천장사 주지를 지낸 허정스님은 자(慈)와 비(悲)를 겸비한 스님이다. 자(慈)란 무엇인가? 그윽할 현(玄)자 두 개에다 마음 심(心)자가 조합된 글자이다. 자(慈)자는 그윽한 하늘같은 마음, 즉 한없이 자애롭다는 뜻을 품고 있는 글자이다. 스님은 천장사 주지 때, 내 산방에서 검둥이를 분양해 갔는데 출가한 뒤 부모만큼이나 속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났다고 내게 토로한 적이 있다. 부모만큼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스님이라면 천품이 몹시 선하지 않은가. 비(悲)란 무엇인가? 아닐 비(非)자에다 마음 심(心)자가 조합된 글자이다. 즉 아니라고 나무라는 마음, 죽비를 든 마음이 비(悲)자인 것이다. 스님이 승단의 문제점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할 말을 계속하는 불퇴전의 태도를 보면 부드러운 성정과 달리 비판의식의 날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나와 인연이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께 문자를 띄웠다. 내 산방으로 두 번이나 찾아왔을 때 남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공감한 나머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연재하기로 약속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다음과 같이 총리께 문자를 보냈다.

‘말없는 1천만 불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88세 설조 노스님께서는 27일째 단식하고 있습니다. 총리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노스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정치권에서 방관하고 있는데 분노가 치밉니다. 정찬주 합장’

종단 밖의 인사에게 호소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종단사건 역시 대한민국 안의 일이니 어디든 호소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즉시 문자로 답을 주곤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총리께서 신중하게 들여다보실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부끄러운 까닭은 또 있다. 불자들에게 지대하게 영향을 미쳐왔던 산중의 원로대덕 스님들이 노스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조용하다는 것이다. 선방 수좌의 서슬 퍼런 일갈(一喝)도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대장부 일대사(一大事)가 실존의 생명 너머에 뜬구름처럼 있다는 말씀이었는지 청법(請法))의 예를 또 갖추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고단한 중생을 위해 TV든 라디오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던 이른바 스타 스님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삼십여 년 동안 신라의 김지장스님, 만해스님, 경봉스님, 성철스님, 일타스님, 혜암스님, 법정스님 등 고승의 일대기인 장편소설을 집필해 온 문단 말석의 작가이다. 내가 천착해온 고승 분들이 ‘오늘 환생한다면 첫 일성과 행동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당장 설조 노스님이 계시는 천막으로 달려가시어 스님의 말라가는 손을 맞잡았을 것 같다. 지금도 내 귀에는 혜암스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994년 4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된 혜암스님은 종단의 갈등이 심해지자, 개혁회의를 출범시키고 개혁종단을 탄생케 했다. 그때 혜암스님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우리 종단 모습이 부처님 말씀과 달리 흐릿해지고 망가진 것 아닙니까. 그 흐릿해진 부분을 개혁하자는 것이지 부처님 법을 개혁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부처님 법은 개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부분을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가지고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앞에 길이 있다’는 선가(禪家)의 금언이 오늘따라 더욱 사무친다. 그 길이란 부처님 제자로서 ‘지금 이 순간 수행자로서 내가 할 일’을 뜻함이 아닐 것인가. 거룩한 한 생명을 떠나보내고 난 뒤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양심에 시나브로 얹히는 허물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자(慈)와 비(悲)를 겸비한 파사현정의 고승대덕 스님이 그립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정찬주 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 _()_ 2018-07-19 01:34:00

    _()_ _()_ _()_   삭제

    • 불자 2018-07-18 22:46:26

      걱정과 안타까움에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담마의 길을 향해 가는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가 수행하고 있기는 합니까?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진리를 배운다는 승가와 대중은 노스님의 처절한 몸부림을 외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왔습니다.
      설조스님의 정법에 대한 투사와 작가님의 뜨거운 눈물이 잠못 이루는 밤이 될 듯 합니다.   삭제

      • 땡중 2018-07-18 21:46:57

        Snow정은 마군의 호위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만 조만간에 무간지옥에 떨어져 세세생생 헤어나올 길이 없으리라 그 호위군단들도 마찬가지^^   삭제

        • 일진 2018-07-18 21:19:13

          진심을 애써 외면하는 자의 마음도 한마음이겠지만 파사현정을 향한 노승의 절박한 결사를 비하하는 인면수심은 보기 딱하다.
          마치 여전히 박근혜를 향해 손수건을 흐드는 또라이부대를 연상케 한다. 자승설정의 노예들임을 인정하노라.   삭제

          • 범부중생 2018-07-18 19:34:24

            그 유명하신 스님들은 모두 어디계십니까?
            88세의 어르신이 거리에 있습니다.
            같은승복입은 인연만으로도 충분하지않습니까?
            생명은 고귀한겁니다.
            수행자의 생명은 이리해도 되는건가요?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세월호 아이들보며 눈물흘린이가 한둘입니까?
            그게 인지상정인데 같은 승복입은 수행자들은
            인지상정도 없단말입니까?
            스님들, 승복입고 거리에 나오지마십시요.
            꼭꼭 숨어있으세요. 부끄럽습니다.
            이나라에 스님들~ 너무들하십니다   삭제

            • 적주비구 2018-07-18 19:23:04

              군대 일가려고 호적 나이를 10년이나 올렸습니까? 청년들이 군대가서 죽을 때 그런 파렴치한 짓으로 면제 받고 잘 먹고 잘 살았습니까? 범죄로 올린 나이를 이렇게 써 먹으시니 말문이 막힙니다.삭제   삭제

              • 소설가는 무은 2018-07-18 19:21:36

                출가자들의 일에 기웃거리지 말고 소설이나 쓰시오. 소설가라면서 뭔 소설을 썼나 모르겠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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