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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야생마에게 물리는 재갈과 같은 것가나카 목갈라나 이야기
스리랑카 담불라 사원에서 만단 부처님의 발바닥. 평평하고 화려한 문양을 갖춘 것은 전생에 선업을 짓고 계를 잘지키며 이웃에게 이로움을 많이 주었다는 증거다. 사진=김용섭.

수행자는 깨달음을 위해 일생을 건 사람들입니다. 깨닫기 위해 세속 사람들이 쫓아다니는 가치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묵묵히 깨달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도 같습니다. 천지분간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뜁니다.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충실할 뿐입니다. 경전을 보면 중생을 가리켜서 말에 비유하기도 하고, 말을 길들이는 법에 빗대어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한다는 법문도 만나게 됩니다. 수행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 야생의 본능을 제어하여 부처님의 매뉴얼로 훈련한다는 뜻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깨달을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그 깨달음이란 것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느냐가 다를 뿐이겠지요. 부처님은 바로 이것을 아는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부처님을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면 그의 근기를 잘 살펴서 그를 거두고 조련합니다. ‘조련한다’라는 말이 어떻습니까? 길들인다는 뜻이지요. 부처님은 중생을 아주 잘 길들이는 분으로, 여래10호 가운데 ‘조어장부’가 바로 이것입니다. 천지분간을 모르고 제 성질대로만 길길이 날뛰는 중생을 제대로 안내하는 분이란 뜻을, 잘 길들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길들이냐는 것이겠지요. 이때는 철저하게 중생의 입장을 헤아려야 합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부처님이 자기 마음에 맞게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져야 할 대상에게 들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니, 세 단계 방법과 여섯 단계 방법이 있습니다.

세 단계 방법은 부처님께서 말 조련사와 나누는 대화에서 일러주셨고,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말 조련사 케시 이야기’에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여섯 단계의 길들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법문은 가나카 목갈라나 바라문과 나눈 대화에 실려 있습니다. (관련글: 붓다가 말 길들이는 법을 묻다붓다가 사람을 죽인다는데)

가나카 목갈라나 바라문이 사밧티 녹자모 강당으로 부처님을 뵈러 왔습니다. ‘가나카’란 ‘회계사’와 같은 뜻입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지요. 숫자를 헤아리고 계산하는 일은 차분해야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 가나카 목갈라나가 평소 궁금했던 걸 부처님에게 여쭈었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지금 이 녹자모 강당의 계단을 보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차례로 지어졌습니다. 바라문들이 공부를 할 때에도, 궁사들이 제자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에도 처음부터 차례차례 가르치고 익혀 나가게 합니다. 숫자를 헤아리는 일로 먹고 사는 저희 같은 사람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를 받아들이면 저희는 그들에게 숫자를 하나씩 헤아리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 그런데 고타마 존자의 가르침도 이와 같이 차례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라문이여, 조련사가 혈통 좋은 우량한 말을 얻어서 가장 먼저 고삐에 능숙해지도록 길들이는 것처럼, 여래가 길들여야 할 사람을 얻으면 가장 먼저 계율을 일러줍니다.”

부처님의 이 첫 번째 대답을 들여다보면 아무나 길들이지 않는다는 뜻이 읽혀집니다. 마치 조련사가 아무 말이나 데려와서 길들이지 않듯이 말입니다. 제 성질대로 길길이 날뛰는 말이라 해도 잘 살펴서 그 말에 명마의 품성이 엿보일 때 그 녀석을 붙잡아다 길들이지요. 그것처럼 부처님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 아무나 다 수행의 길로 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얼핏 보아 거칠고 사악하고 남루할지라도, 혹은 지적이고 세련되고 여유가 있어 보여도 그가 이 수행의 길을 잘 걸어가서 끝내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지를 잘 헤아려본다는 뜻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명마로 거듭날 만한 사람을 알아보았다면 그를 수행의 길에 들어서도록 권유하는데, 가장 먼저 ‘계율’로 길들인다는 대답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에게 계율을 조목조목 일러주고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고 행동을 올바르게 하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걸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수행자로 살아가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누구이건 계율을 가장 먼저 일러준다는 것, 새겨볼만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생마는 제 몸에 그 어떤 것도 가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다가가면 앞발을 높이 치켜 들고 히~힝 하고 울어대고 심지어는 그를 위협하거나 아주 멀리 바람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길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도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재갈을 물리고 그 재갈에 고삐를 연결해서 야생마로 하여금 이 도구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련사가 고삐를 쥐고 그 말을 길들입니다.

여래가 중생에게 계율을 일러주는 것을 바로 이것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분간을 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길길이 날뛸 줄만 아는 야생마 같은 중생에게 가장 먼저 계율이라는 고삐를 걸어서(혹은 재갈을 물려) 길들인다는 것. 얼마나 이 도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느냐에 따라 훗날 그 야생마가 명마로 거듭 나느냐, 그렇지 않으면 끝내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느냐로 결딴이 나겠지요.

스리랑카 담불라 사원 벽화. 부처님이 가르침을 설하시자 제자들과 보살들이 법문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사진=김용섭.

계율이란 것이 바로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생이 수행의 길에 들어선다는 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가 계율에 잘 길들여졌다는 판단이 섰을 때에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즉, 두 번째 단계는 눈, 귀, 코, 혀, 몸, 의지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자신의 감각기관을 잘 살펴서 행여 외부의 것을 갖고 싶어 욕심을 일으키거나 갖지 못해 우울해지거나 가지려다 그만 악업을 짓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라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제자가 이 두 번째 단계의 가르침에 잘 길들여졌다는 판단이 서면, 이어서 밥 먹는 법으로 길들입니다. 세 번째 단계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먹는 음식의 양을 잘 파악하라는 것이지요. 밥을 먹는 이유는 수행하기에 적당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세 번째 단계의 가르침에 잘 길들여졌다는 판단이 서면, 네 번째 길들임의 단계에 들어섭니다. 낮이건 밤이건 마음에 번뇌가 끼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라는 당부입니다. 이어서 다섯 번째 길들임에 접어드는데, 일상에서 어떤 행동을 하건 자신의 행위와 마음을 잘 살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 길들여졌을 때 비로소 부처님은 제자를 향해 여섯 번째 단계의 가르침으로 길들입니다. 그건 바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수행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자는 이때가 되어서야 탁발을 다니고 홀로 좌선을 하면서 지혜의 빛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섯 번째 단계로 잘 길들여진 사람에게 선정의 단계가 펼쳐지고, 그 선정의 단계는 지혜로 이어지고, 지혜는 해탈로 이어지고 이어서 해탈지견의 단계로 이어진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불교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선을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참선하려고 앉았는데 영 잘 되지가 않습니다. 자꾸 딴생각을 하게 되고, 몸만 아프고 지겹기만 하고….”라는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초기경전을 읽자면, 참선이란 것이 그렇게 아무나 아무 때에나 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참선은 마음에서 번뇌를 없애기 위해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먼저 몸과 마음이 악한 것에서 멀리 떠나고, 제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번뇌를 잘 헤아려 그걸 없애려고 일상에서 노력한 뒤에야 참선을 하는 단계가 주어집니다. 참선은 거친 번뇌를 없애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 다다른 이가 지혜로 나아가기 위한 수행입니다. 그러니 참선 좀 제대로 하고 싶다면,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부처님이 제시하는 ‘계율’부터 챙겨야 합니다.

거친 말에게 가장 먼저 재갈과 고삐를 물리듯 중생은 계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거지를 늘 살피고 사소한 잘못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수행자의 기초입니다.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계율부터 살피라는 부처님의 당부, 지금 우리 불교계에서는 이 당부가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재가불자들과 이 경을 읽는데 그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
가나카 목갈라나 이야기는 <맛지마 니까야> 107번째 ‘가나카 목갈라나경’을 각색한 것입니다.

이/미/령/의/사/람/이/經/이/다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 사람씩 만나보려 합니다. 인물 하나가 경 하나입니다. 사람보다 더 귀하고, 사람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연재 제목도 ‘사람이 경이다’로 정했습니다.

경전번역가, 불교 칼럼리스트, 책 칼럼리스트, 불교교양대학 강사. 불광불교대학, 동산불교대학, 대전보현불교대학, 등에서 불교강좌를 맡고 있고, 현재 BBS 라디오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 ,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이미령의 책잡히다> 를 진행중이다. 책읽기 모임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대안연구공동체의 직장인 책읽기반 등을 열고 책읽는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이미령의 다른기사 보기
  • 야생마를 왜 길들여야하나? 2018-08-16 18:53:18

    야생마대로 놔두면 될 일이지
    인간의 욕심으로 야생마를 잡아 길들이는게 문제아닌가?   삭제

    • 불자 2018-08-16 00:48:47

      요새는 출가자들이 계율을 철저히 어기고
      반대로 재가자들이 계율을 철저히 지킨다   삭제

      • 우려 2018-08-15 22:33:53

        너무 교과서 같은 글이라 호소력이 떨어진다. 지금 당면한 과제는 파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제도와 환경 마련에 대한 고민이다. 계율 안지켜서 이렇게 되었으니 계율 지킵시다? 틀린 말은 아니나 해답 찾는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는 문제인식이다. 인식이 너무 안이하고 세상 이해가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닌지.   삭제

        • 미륵도용궁사 2018-08-15 22:10:23

          계율이란 무엇인가? 붓다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데 있어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교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자는 데 계율의 제정 목적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네 인격을 불격으로, 가정을 불가로, 국가를 불국토로 만들어 가는 성불(인격 --> 성불격, 속가-->성불가, 국가-->성불국토)을 위한 울타리가 계율이지 아니한가?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독신 강제는, 역설적으로 불교 캐톨릭 등 성직자(수행자)들의 성범죄의 원인이 되어 왔다.   삭제

          • 미륵도용궁사 2018-08-15 22:06:21

            “美, 가톨릭 성직자 300명, 1000명 넘는 아동 성 학대·은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교구에서 수십년동안 300여명의 성직자들이 1000명 이상의 아동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펜실베이니아주 조쉬 샤피로 검찰총장은 14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대배심이 지난 70여년 동안 벌어진 가톨릭 교구에서의 아동 성폭행 의혹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chosun.com 2018.08.15.)

            이는 무얼 말하는가? 종교인의 독신제도는 그자체로 자연의 섭리에 위배 된다.   삭제

            • 미륵도용궁사 2018-08-15 21:50:03

              조계종은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독신 비구승 제도를 폐지하고 스님들 결혼을 자율에 맡기는 제2의 대승불교 운동을 통해, 재창종되어져야 한다.

              지겸 삼장, 구마라습 삼장, 신라의 원효, 고려의 무수한 재가화상들, 심지어 조선말의 경허선사에 이르기까지 소위 대처승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있어왔던 대승불교의 한 모습이다.   삭제

              • 미륵도용궁사 2018-08-15 21:45:46

                그럼에도 '대처승 제도'을 '왜색'로 몰아 왜색불교 척결이란 미명하에 불교 궤멸을 통한 기독국가화를 추구한 기독장로 이승만의 옴흉한 계략에 부화뇌동한 불교정화 주동자들과 이기붕 휘하 종로깡패들로 급조된 폭력승들에 의해 그 많던 유학파 고급 지식인 대처승들을 내몰고 대학, 불교병원, 불교기업 들을 잃었으니, 이제는 이의 반성 위에 불교가 재출발해 한다.   삭제

                • 불은자 2018-08-15 20:00:14

                  무엇이든 쉬운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많은 체험을 통해 알았을텐데,
                  야생업을 다스리는 재갈을 물린 계 또한 시행착오를 통해 상향발전하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본인이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미며 본인이 직접 해보면 더 잘못할수도...

                  세상에 많은 동물 중생이 남을 헐뜯고 깍아내려 자신을 우똑세우려는 언행을 일삼는 것은
                  자신이 야생마인줄도 모르며 야생마를 벗어나려는 진심이 없는 야생마이기 때문

                  우주와 생명체는 불교가 없어도 연기하는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며
                  세뇌는 무서운 업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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