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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버금가는 종교의 나라 포르투갈이미령의 포르투갈 여행기 ①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소설 <리스본의 겨울>은 좀 독특합니다.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랄보, 그에게는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루기 어려운 애인이 있습니다. 루크레시아입니다. 이 여인은 미술품 암거래상인 남편이 있습니다. 암거래상이라는 직업은 위험이 따릅니다. 거금이 오가고 사람 목숨이 순식간에 날아가지요.

루크레시아는 이런 자신의 처지에 환멸을 느끼는데 바로 이때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랄보를 보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남편이 연루된 끔찍한 살인사건을 목격한 루크레시아는 남편에게서 멀리 떠나려고 합니다. 그녀가 가 닿고 싶은 도시는 바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리스본은 몰리나의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작품들에도 늘 몽환의 공간, 쇠락한 기운을 안고 있지만 현대도시문명에 지친 사람들이 가서 안기고픈 곳, 영원히 그곳에서만큼은 익명으로 남고 싶은 도시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페르난도 페소아라는 걸출한 작가의 책 <불안의 서>와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포르투갈은 또다시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버킷리스트가 되어 있지요.

페소아가 앉아 있는 모습을 브라질레이라 카페 앞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제공 김용섭.

나는 포르투갈과 리스본을 아주 오래 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파두(Fado)를 계기로 가슴 한켠에 품었습니다. 뱃사람의 애환을 담고 있고,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부를 기다리는 아내와 연인, 가족들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는 파두는 거칠면서 우아한 서정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파두를 들으면서 ‘언젠가는 이 파두를 듣기 위해 꼭 그곳으로 가고 말테야’ 하는 꿈을 안고 있었지요.

파두하우스인 파이아(Faia)에서 기타리스트 모습을 담았다. 사진제공 김용섭.
산타 엥그라시아 성당. 사진제공 김용섭.
성당에 안치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시신을 담은 석관. 사진제공 김용섭.

하지만 파두 하나를 위해 멀리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돈 많고 시간 많은 한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파두 공연을 듣고 보았다는 한국 사람들의 소감을 듣자면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잊어버려! 그저 선술집에서 무지하고 가난하고 세련되지 못한 남녀들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에 불과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알파마 지역에는 저녁마다 파두 공연이 열린다는 안내글과 함께 작은 식당들이 저녁에 손님들을 맞고 있다. 사진제공 김용섭.

포르투갈에 대한 환상이 옅어질 무렵, 아시아 국가들의 불교흔적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던 내게 다시 한 번 그곳과의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이웃나라 일본이며, 중국, 홍콩과 마카오, 인도와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을 다니다보면 그 나라들 역사 어느 지점에선가 어김없이 포르투갈이 등장했습니다. 포르투갈이란 나라를 거론하지 않으면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역사에는 빈칸이 많이 생기더군요.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 제제를 유일하게 이해해준 이웃집 아저씨 뽀르뚜가가 포르투갈인이라는 사실, 아시아와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역사시간에 배웠으련만 내 두 발과 내 두 눈으로 만나는 세계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포르투갈을 보고 나서야 새삼스러웠습니다. 이리하여 포르투갈이란 곳에 한번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포르투갈에 가면 아시아의 서글픈 식민지 역사와, 어찌되었거나 아시아 근대문명의 서막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으리라는 좀 어설픈 생각이 자리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포르투갈로 날아갔습니다.
뜻밖에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소박했습니다. 그 오래 전 식민지에서 수탈해간 막대한 다이아몬드와 금, 은 등의 보화로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하리라 예상했지만 그저 ‘그때는 좋았지’라는 회한어린 영광만 쓸쓸하게 남겨진 채, 비좁은 골목길로 트램이 지나다니고, 화려하고도 반짝이는 유럽의 대도시와는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일곱 언덕에 세워진 리스본, 비좁은 골목을 오가는 트램이 지금은 도시 명물이다. 사진제공 김용섭.

가방에 잔뜩 넣어간 포르투갈 관련 책자들.
하지만 하필 여행 첫날부터, 지독하게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느라 그 책들 제대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먼 곳까지 날아온 여행길이 아쉬워 열에 들뜬 몸으로 안내책자 한 권만 손에 든 채 이리저리 리스본을 쏘다녔지요. 그런데 그때 리스본에서 조금이라도 오래된 건축물을 보려고 하면 빠짐없이 이런 설명이 달려 있었습니다. ‘리스본 대지진을 이겨냈다’라거나, ‘대지진 당시 무너져서 다시 지었다.’…

아, 그러니까 바로 이곳이 그 오래 전 엄청난 지진을 겪었던 곳이란 말이지. 

그제서야 새삼스럽게 ‘리스본 대지진’이라는 말이 내 오래된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군데군데 여전히 지진의 흔적을 안고 있는 곳이 있었고, 지금도 발굴 중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지금이야 종교적 분위기가 많이 쇠락해 있지만 포르투갈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톨릭국가였습니다. 신을 향한 최고의 찬미를 아시아 각지와 브라질에서 수탈해간 재물로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었겠지요. 그런 인간을 향해 신은 포르투갈 어느 곳에 먼저 내려가서 사랑의 손길을 드리울까 고민스러울 정도로 이 나라는 온통 화려하고 엄숙하고 웅장한 종교적 건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라…. 

지진 피해를 입은 채 뼈대만 남아 있는 카르무 수도원. 사진제공 김용섭.

시계를 한참 되돌려서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755년 11월1일.
이 날은 만성절입니다. 만성절(萬聖節)은 영어로 ‘All Saints Day’라고 하는데,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날이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독실하디 독실해서 다른 나라 기독교인들이 거의 눈살을 찌푸리며 미신에 가깝다고 비난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국가였던 포르투갈입니다. 종교재판이 종종 열렸고, 가톨릭 교리를 무시하거나 반박하는 자에게는 공개재판과 처형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형도 심심찮게 벌어진 모양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야 조금 기력을 되찾고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니콜라스 시라디의 책 <운명의 날>(강경이 옮김/에코의서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563년, 종교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견고한 보루인 종교재판소가 생긴 후부터 성당의 신성한 향 내음에는 항상 살이 타는 냄새가 살짝 섞여 있는 듯했고 그로 인해 유례없이 순종적인 교인들이 탄생했다.” (20~21쪽, 이후 인용문은 다 같은 책에서 옮긴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저절로 깊은 믿음이 솟아나온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깊은 믿음을 세상에 보이지 않으면 후환이 두려워서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요. 아무튼 포르투갈은 종교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성당과 수도원의 수만 놓고 본다면, 지상에서 리스본만큼 신성한 하느님의 도시도 없을 것이었다. 12세기에 지어진 주교좌성당 외에도 교구 성당이 40군데가 넘었고, 교구에 속하지 않은 성당도 몇 군데 있었다. 그 외에 공소가 121곳, 수도원이 90곳, 이 외에도 다양한 수도회들이 150곳이나 있었다. 교회 첨탑은 숲을 이루었고 크고 작은 교회의 동근 지붕들은 작은 언덕처럼 솟아있었다.”(18쪽)

리스본이라는 도시 한 곳에 세워진 종교시설물의 숫자가 놀랄 정도입니다. 특히 공소(公所)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아 미사를 집전하지 못하는, 작은 단위교회라고 하는데, 이런 곳이 121곳이나 되었다는 사실! 포르투갈 민중의 도타운 신앙심을 짐작할 만합니다. 책에서는 리스본 인구 25만 명 중에 10퍼센트가 수도사였다고 하며, 책의 각주에서는 역사학자의 말을 빌려 “아마 티베트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성직자가 가장 많은 나라”였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이런 리스본이 만성절을 맞았습니다. 교회마다 쟁그렁 쟁그렁 종을 울리고 각별하고도 특별한 날을 맞아 도시는 온통 화려하고도 엄숙한 축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상인들은 가게문을 닫았고, 도시에 사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든 사람들이 성당으로 향했을 테지요. 옷장에 잘 걸어둔 정장을 꺼내 입고 일제히 그들이 인연 맺고 있는 성당으로 발길을 재촉했을 사람들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침 9시 30분.
성가대의 은은한 찬송이 교회의 둥근 천장을 부드럽게 감싸 흐르고 맑은 대기로 뻗어나가고, 세상은 축복과 복종과 환희와 순결한 믿음으로 반짝이는 가운데, 갑자기 대지가 흔들렸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대지가 흔들린 시간은 단 3분!

훗날 현대기술로 추정했을 때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9 수준의 지진이 신성한 국가 포르투갈, 종교적 열망과 구원의 바람으로 정결하게 들뜬 리스본을 강타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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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천국 2018-09-23 03:11:15

    중세기 종교천국으로 화려함의 극치와 신을 찬미하던 포르투갈이 불과 3분만에 신의 영광도 종교천국도 사라진 것 지상의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삭제

    • 추천 2018-09-22 15:13:05

      아래 두 개의 기사댓글 추천합니다.

      또한 여행이 문화가 종교가 역사가
      좋아서 기사내용에도 추우천   삭제

      • 2018-09-22 14:37:53

        지난주 책 기사중에
        동남아 중남미처럼 종교가 있는 나라 사람들은 불행하고
        북유럽 서유럽처럼 종교가 없는 나라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기사를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삭제

        • 불자 2018-09-22 14:36:04

          티베트 비구들의 범계행위
          가톨릭 성직자들의 범계행위
          그리고 각 교단 수장과 집행부의 은폐행위
          피해자 단체에는 해종굴레 씌워 탄압하기

          이런 기사가 포커스 정체성에 맞는 기사 아닐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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