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옥복연의 소통의 미학
노력(viriya):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인 “여권통문”
  • 옥복연_종교와젠더연구소장
  • 승인 2018.09.23 10:28
  • 댓글 0

“혹시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여성 300여 명이 길 한복판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권리 선언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낭독했다. 김소사와 이소사라는, 제대로 이름조차 없는 김씨와 이씨 여성들이 발표한 이 ‘여권통문’은 조선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조혼과 축첩, 삼종지도가 당연시되던 조선에서, 아녀자들이 길 한복판에서 이런 주장을 했으니, ‘황성신문’은 “하도 놀랍고 신기하야….”라며 논설을 대신하여 이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당시 조선은 서구 개화사상이 유입되었고 독립신문 등에서는 남녀동권을 주장하였으며, 기독교는 선교사가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질 때였다. 하지만 남성중심의 지독한 가부장사회가 근간이었기에, 이 ‘여권통문’이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이 선언문은 또한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을 말하지 말며 술과 밥을 지음이 마땅하다 하는지라. 어찌하여 사지육체가 사나이와 같은데 이같은 압제를 받아 세상 형편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라며, 여성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과 동등한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 여성들의 행위는 184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요구한 세네카폴즈 집회와 비교할 만큼 혁신적이다.

그뿐이랴, “우리도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실시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 재주를 배우고,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워 남녀가 일반 사람이 되게 할 당장 여학교를 실시하오니….” 라며 여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제국신문’은 “우리나라 부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며 이런 사업을 창설할 생각이 날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요. 진실로 희한한 바로다”라고 했고, ‘독립신문’은 여성교육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니 정부는 급하지 않은 군사비를 모두 여성교육비에 쓰라며 적극 지지했다. ‘여권통문’을 주도했던 이 여성들은 단순히 선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贊襄會(‘양성원’ 혹은 ‘순성회’라고도 불림)를 조직하였고, 여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리하여 고종이 공립여학교 설립까지 약속했지만, 보수 세력들에 의해 좌절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사재를 털고 회비를 내서 한국 최초의 민간인 설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했다. 1886년 선교사 스크랜튼이 세운 이화학당보다 10여 년 지난 후였지만, 초대 교장이었던 김양현당은 “저 어린 여학생의 교육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여성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이후 3.1운동이나 국채보상운동 등에서, 여성들은 남정네들의 일로 여겼던 정치라는 공적 영역으로 역할을 확대했다. 독립운동이나 계몽운동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도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 여성 참정권을 보장받기도 했다. 참으로 여성교육의 힘은 컸다. 

여성불자들을 위한 학교 역시 불교계 신여성들에 의해 세워졌다. 1922년 ‘조선불교여자청년회’가 ‘능인여자학원’을 운영하였으며, 지역 사찰신도회나 여성단체들에서도 여성교육에 앞장섰다. 비록 외국 선교사에 의한 기독교 여성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지만, 민족자본으로 자발적, 자주적으로 여성교육이 이루어졌고, 애국운동과 민족해방운동에도 동참했다. 이처럼 주체적인 여성불자들의 역할은 해방 이후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대사회적인 활동도 미진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교 내부 분규에 여성불자들이 동원되어 이를 수습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국립여성사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는 내년 1월까지 여권통문에 관한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어쨌든 ‘여권통문’ 120주년을 기념하면서 최근 여성부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했던 김소사, 이소사의 선구자적 행위를 칭송했다. 인류사를 통해 볼 때, 이름을 가진 여성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는 역사의 기록자, 암송자, 전달자가 주로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여성도 역사에서는 종종 삭제되거나 축소되기도 했기에, 여성들은 남성들의 히스토리he-story가 아니라 허스토리her-story를 알리려고 노력한다.

불교사도 이와 유사한데, 초기경전 5부 니까야에는 부인, 딸, 어머니, 왕비, 여제자 등 약 120여 명의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름조차 없는 여성들이다. 예를 들면 예순 명의 비구들을 아라한으로 만든 여성은 “마띠까의 늙은 어머니”로, 붓다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 수다원과에 오른 여성은 “사왓티에 사는 한 여인”으로, 또 붓다께서 제자들 앞에서 직접 칭송한 어린 여성은 “길쌈하는 소녀”로만 전해 오고 있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져야 온전한 인류사가 되므로, 남녀는 허스토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앙굿다라니까야』의 ‘노력의 경’에는 붓다께서 수행승들에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세 가지 경우를 가르치고 있다. 즉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약하고 불건전한 것이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 생겨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생겨난 괴롭고, 찌르고, 쓰리고, 따갑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신체적 느낌을  참아내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녀 차별심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온 인류를 향한 평등심이 일어나게 하는 것, 이는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한다고 붓다는 가르친다. 그러므로 붓다의 제자라면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자가…” 혹은 “여자가…”라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의 종교가 최고이고 우리 민족만이 우수하다고 차별하지 않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붓다의 제자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옥/복/연/의/소/통/의/미/학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는 유난히도 대화가 많이 나온다. 붓다는 제자들이나 신도들과 질문하고 응답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교도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붓다의 대화는 상대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소통'하며, 그 결과 공감으로 나아가게 한다. 남과 여, 갑과 을, 출가자와 재가자 등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소통의 방법을 초기경전 니까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성의 관점으로 경전을 읽고 교리를 재해석하며, 불교사에서 잊혀진 여성이나 뛰어난 여성불자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다.여성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대학 강사를 지내다가 현재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옥복연_종교와젠더연구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불교포커스 기사를 후원해주세요
  •            
후원하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