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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리스본을 꽃피우고 쇠락케 했다이미령의 포르투갈 여행기 ②

1755년 11월1일 아침 9시30분.

세 차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필이면 성자들을 기리는 예배를 올리던 바로 그 때,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서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성소를 밝히던 촛불들이 도시 곳곳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온 도시가 초토화되자 사람들은 테주강으로 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리스본을 탈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배가 아니라 해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강물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중략) 내가 있던 지점에서 약 6.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모습으로 강물이 부풀어 오르며 솟아올랐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 산처럼 솟아오르더니 부서지고 포효하면서 격렬하게 강변으로 달려들었다.” (니콜라스 시라디의 책 <운명의 날> 29쪽. 이후 인용문은 다 같은 책에서 옮긴 것임을 밝힙니다.)

지진이 일어난 지 90분 뒤 해일이 발생했고,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사람이며, 정박 중이던 배, 그리고 강가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렸습니다.

테주강 풍경. 얼마나 넓은지 바다가 아닐까 착각하게 된다. 사진제공 김용섭.

지진과 해일과 대화재. 이 가공할 재난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얼마나 많은 재산들이 사라졌을까요? 후세 사람들은 저마다의 셈법으로 헤아려 각기 다르게 집계했지만, 리스본 인구의 반 이상이 죽었다고도 하고, 그 숫자는 부풀려졌으니 10분의 1이 죽었다고도 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던 도시가 한순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지진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고, 해일이 모든 것을 쓸어갔고, 화재가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역사적인 문헌이나 국가적 차원의 공적인 서류, 그리고 상인들의 상거래를 기록하던 문서도 잿더미가 됐습니다.

책을 덮고 그때의 일을 상상해봅니다. 천년만년 이어갈 것 같았던 건물이 무너지고 세상은 비명과 신음소리로 뒤덮였습니다. 그저 탈출, 탈출뿐이었을 것입니다. 이 죽음의 도시를 한시라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입니다. 그 화려했던 도시 리스본은 돌무더기 폐허가 되어버렸고, 시체는 썩어가고 있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린 채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테지요.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저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자비의 손길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며 살길을 찾아 이리저리 내달렸을 것입니다.

리스본 대성당. 지금도 대지진 당시 파묻힌 유물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사진제공 김용섭.

당시의 왕은 주제 1세였습니다. 왕가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백성들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딱하게도, 그는 너무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군주였습니다. 천막으로 지은 임시궁전 안에서 그는 ‘멘붕’에 빠져 버렸습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을 포함한 모두는 저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신부들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이런 재난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만용이 신의 저주를 불러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부서진 돌더미 위에서, 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다 쓸려 가버린 폐허 위에서 저들은 하늘에 용서를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코메르시우 광장에 세워진 주제1세 기마상. 기마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테주강이다. 사진제공 김용섭.
제로니무스 수도원-지진에도 버틴 건축물로서 포르투갈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답고 화려한 마누엘리즘 양식을 만날 수 있다. 사진제공 김용섭.
제로니무스 수도원 내부. 사진제공 김용섭.

이때 왕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외무대신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이 긴 이름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줄여서 ‘카르발류’라 부르거나, 혹은 후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폼발 후작’이 조금 더 부르기가 수월할 듯합니다.

정통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지방유지 출신이었던 카르발류. 그러니까 그의 위치는 상류 부르주아 계급과 하급 귀족 사이의 계층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은  카르발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34쪽 참조)

카르발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혼돈을 수습할 전권을 안겨줍니다. 그는 리스본 재건에 앞장섭니다. 공포와 혼돈과 약탈에 빠진 도시의 질서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남자들을 붙잡아 오고, 상점을 약탈하는 자들을 처형합니다. 식량 폭동을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부서지지 않은 집을 피난민들이 공유하게 하고, 죽은 자들의 장례를 위해 종교계와 협력합니다. 그리고 재난 끝에 당연하게 찾아오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주제 1세가 위임한 권력을 휘두르며 리스본의 질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카르발류를 괴롭힌 것은 뜻밖에도 종교였습니다. 종말론을 들먹이는 일부 신부들이었습니다.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모든 것이 종교로 통했습니다. 카르발류의 통치에 대주교를 위시한 종교계도 협력했지만, 일부 광신적인 신부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세상에 종말이 다가왔다!
기도하고 회개하라!
리스본을 탈출해라!

상 호케 성당. 리스본의 성당에 들어가면 이렇게 화려한 내부 모습에 압도당한다. 사진제공 김용섭.

카르발류는 대주교에게 광신도들의 입을 다물게 해주기를 탄원합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포르투갈 교회는 이런 카르발류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이후 카르발류와 종교계는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인간의 대지에 일어난 재앙에 대해서 양쪽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그리고 양쪽은 끝까지 대립하게 됩니다.

이 리스본 대지진이 인류역사에 처음 일어난 지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언제나 저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일어났던 재난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 사람들은 몸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꼈던 것입니다. 근대 유럽 지성계가 리스본 대지진으로 화들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글이 쏟아지고 수많은 견해가 제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진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 진동에 의한 자연현상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게 되면서 현대지진학이 탄생하는 데에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볼테르는 이 대재난을 배경으로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라는 책을 씁니다. 이 책은 유럽의 무지몽매를 대놓고 조롱하게 되지요.

어찌되었거나, 카르발류는 1755년 대지진 직후부터 주제 1세가 사망하기까지 27년 동안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고,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가 평생을 걸고 이룩한 개혁은 “리스본 재건, 귀족 견제, 정교분리, 예수회 추방, 노예제 철폐, 세금 조례 단일화, 군대 개혁, 상업 육성과 규제, 왕립 출판사 설립”(229쪽)이었고, 또 교육 개혁에도 착수했습니다. 어쩌면 카르발류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은 대지진의 악몽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유럽에서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말합니다. 모두가 개혁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주제 1세의 맏딸인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마리아 1세로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카르발류를 해임합니다. 그는 시골영지로 쫓겨나 가택연금을 당합니다. 그가 개혁해왔던 거의 모든 일은 중지되었고, 가톨릭교회와 옛 귀족들은 다시 기지개를 켭니다. 게다가 하필 마리아 1세는 “포르투갈 사람도 고개를 저을만한 광신도”(239쪽)였다고 하니, 이후 포르투갈이 왜 유럽에서도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코르발류는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정치를 통해서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한 제국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때로는 이런 자연재해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재해를 통해 제국을 갉아먹는 노후한 제도들이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포르투갈 전역이 황폐해지고 도시들이 파괴된 것을 우리들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국가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재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136쪽)

참 무서운 견해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을 맞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엉뚱하게도 나는 코르발류의 생각을 접하면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굽히고 굽실거리고, 조롱당하고, 핍박당하고 착취당하고 살더라도 언젠가는 쥐구멍에 볕들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삽니다. 재앙이 찾아오면 더 낮게 엎드리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재난을 딛고, 바로 그 재난을 짚고서 어영차 몸을 일으켜 세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그토록 방해한 것이 종교 세력이었다는 사실이 좀 어이 없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역사는 그리 즐거운 결과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가 미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인류가 꽃피운 ‘문명’ 속에 종교가 드리운 무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종교와 종교가 대립하는 시대, 한 종교 안에서 파가 갈려서 갈등하는 시대, 한 종교의 한 파 내부에서 권력을 놓고 분쟁하는 시대, 그래서 종교를 생각하기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시대, 너무 머리가 아파서 대놓고 종교를 조롱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대, 종교 때문에 세상이 더 시끄러워 차라리 종교 없는 게 더 낫다는 시대-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거리공연하는 소년. 사진제공 김용섭.

파두와 문학과 낭만을 상상하며 떠났던 포르투갈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여행자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겨주었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씁쓸한 영광이었고, 대지진은 지독한 나락과 힘찬 부활의 신호탄이었지만, 이후의 복고체제는 몰락의 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르투갈이 그렇게 주저앉게 된 데에는 종교가 있었구나.
종교는 인간의 개혁을 싫어하는가.

부패하고 나태한 세상은 혁명을 잉태합니다. 그러다 때를 만난 강력한 개혁은 철권정치를 부릅니다. 기득권층은 훗날을 꿈꾸며 숨을 죽입니다. 세상일이란 것이 영원하지 않으니, 권력은 언제고 힘을 잃게 마련이고, 그때를 노려 한껏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자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기지개를 켜더라도 시대를 읽어야 하는 법. 오직 옛날의 질서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합니다. 혁명이 불러온 자유의 바람을 맛본 세상은 옛날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옛 질서만을 고집한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여행자가 낯선 도시에서 무엇을 만나건 무엇을 느끼건 그건 그의 몫이겠지요.

수없이 밀려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여행자와 달리, 포르투갈 사람은 예전 그대로의 삶을 지금껏 유지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정어리를 굽고, 와인을 나르고, 트램을 타고 도시를 오르내리고, 파두를 듣고 부르고, 골목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한 번 더 그 도시를 방문할 행운을 안게 된다면,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걸음을 느긋하게 옮기면서 다니고 싶습니다. 그때엔 내 주머니에 담긴 <페소아의 리스본>이 나를 골목길 구석구석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포르투갈에 가서 아시아의 역사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내 생각은 보기좋게 어긋났지만 굴뱅키안 박물관 안에서 만난 중국 관세음보살상이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다. 사진제공 김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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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아줌마야 정신차려라 2018-09-28 21:23:06

    언년은 팔자 좋아 이 난국에 해외여행 다니고
    그래봐야 실천행이 따르지 않는 미사여구의 잔치지.
    포커스는 내 댓글을 삭제할 것이고
    저아줌마 마음을 상하게 하겠다 싶으면 무조건 지운다.
    이게 포커스의 운영방침   삭제

    • 운문 2018-09-27 16:58:51

      좋은 기사입니다.
      읽는 내내 생각하게 만들었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글쓴이의 고뇌도 읽힙니다.
      고맙습니다.   삭제

      • 불자 2018-09-26 06:23:28

        지금 우리나라하고 너무나 똑같네요
        분단과 수구 보수개신교 한국지배
        북한핵과 IMF 위기
        분단 수구세력은 아무것도 못함
        주권자 국민위임으로 자수성가한 김대중 노무현정부 개혁조치
        분단 수구세력 저항으로 이명박근혜 들어서고 김대중 노무현 서거
        새월호 메르스 촛불탄핵 후
        다시 주권자 국민위임으로 자수성가한 문재인정부 들어섬
        역시 분단 수구세력이 최저임금 부동산정책으로 다 망한다 저항하나
        판문점 평양 남북정상회담 및 소득주도성장 미래혁신성장으로
        뚜벅뚜벅 개혁진행중
        물론   삭제

        • 이미령님께 2018-09-25 10:49:17

          여행기와 서평 참신해서 좋아요
          단 불광사불교대학에서의 강의는
          매너리즘에 따라 다른 수준을
          보이기에
          또한 불광사 강사진의 불광사태에 대한
          호소문 참여도 유감이구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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