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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근현대 한국불교의 기적, 그 이후
  • 박태원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0.19 16:01
  • 댓글 6
사진은 8월 26일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서 열린 전국승려결의대회 및 적폐청산결의대회 현장.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물이 100도에 이르러 기화 현상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잠잠하던 물이 갑자기 부글거리며 요동친다. 그걸 보고는 물이 곧 수증기로 변할 것을 안다. 어떤 것이라도 획기적 변화에 임박하면 관련된 현상들이 뚜렷해진다. 판연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그 임계점에 가까워지면, 평소에 목격되지 않던 현상들이 발생한다. 조짐이다. 작금의 한국불교는 그러한 조짐을 내보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이 변화의 조짐을 잘 읽고 지혜롭게 대응하면 향상발전이 이루어지고, 조짐을 무시하거나 잘못 대응하면 쇠락한다. 

최근 몇 달 동안에 한국불교에서 발생한 일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짧은 기간 안에 한국불교 최대교단의 현실과 문제점들이 거의 모든 불교인들에게 인지되었고 사회적 수준에서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교단 운영의 근본문제가 이처럼 단기간에 불교계와 사회의 공적(公的) 의제로 뜨겁게 부각된 적이 있었던가. 한국불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목전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현상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직감하고 있다.

근대 이후 한국불교의 양적 성장은 기적이다. 기복불교 비판론을 십분 반영해도 기적이다. 근대 이전의 왕조적 권력질서와 신분차별을 해체하고 새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은 그다지 주체적이지 않았다. 일제에 의한 왜곡, 미국과 서구에 종속적으로 기대어 진행된 근·현대의 구성과정,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배출 통로와 역할 부여를 독점하고 교육·의료·문화 등의 인적/물적 자원을 거의 독차지할 수 있었던 기독교의 유리한 입지를 고려한다면, 얼마 전까지도 불교가 최대 종교의 위상을 유지해 왔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불교가 뿜어내는 매력의 다층적 풍요로움과 모든 수준을 포섭하는 근원적 합리성,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줄곧 불교를 외호해 온 여성들의 신심, 일당백의 역량을 보여준 출/재가 학인들의 헌신이 어울려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결코 출가남성 도인 몇 사람의 역할만으로 생긴 기적이 아니다. 교단은 여성들과 재가불자들의 기여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교단 운영의 제도와 역할, 언행의 예법에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이 기적의 한국불교가 이제 새로운 요구에 직면하였다. 양적(量的) 기적에 질적(質的) 기적을 결합시키라는 시대의 요청을 마주하고 있다. 이 요청을 외면하거나 미적거리면 양적 누수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근ㆍ현대 한국불교가 이룩한 기적의 의미도 빛바래질 것이다.

질적 기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현실적 출발점은 간단하고 명백하다. 부처님 가르침에 상응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교단의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는 제도와 시스템, 출/재가, 여성/남성, 소수자/다수자, 약자/강자의 차이를 마치 불변의 본질처럼 여기게 하여 강자의 자리와 기득 권력을 굳건히 하려는 유혹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가동하는 데서 출발하면 된다.

성선설과 성악설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할 것이다. 맹자, 순자, 한비자, 홉스 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인간사 문제를 풀어가려면 이 오래된 상이한 인간관에 담긴 통찰을 균형 있게 운용해야 한다. 두 인간관 모두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다. 성악설에서는 현실감각이 돋보인다. 그들은 인간의 자율적 윤리능력으로 이기심을 제거하려는 것을 공허한 시도라고 본다. 인간에게 내면화된 악행의 경향성이 너무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윤리적 자율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기심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타율적 상벌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상책이라 주장한다. 준수하면 이익을, 위반하면 불이익을 겪게 하는 보상과 처벌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이 인간사 문제의 효과적 해법이라는 것이다. 근대 이후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국가운영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법치주의는 사실상 이 성악설적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

성선설자도 인간의 현실이 다분히 성악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이고도 잠재적인 긍정적 면모를 간과해 버리면, 성악설적 기획의 성과 역시 공허해진다는 점을 중시한다. 없는 듯 희미하고 꺼질 듯 깜박거리는 그 위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에 살려내는 것이야말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며 가치 있는 일이고 궁극 해법이라는 것이 성선설자의 소신이다.

연꽃. 사진=픽사베이.

불성(佛性)이라는 부처 면모는 잠재적 가능성이다. 불성의 주체가 되려면 힘써 노력하여 부처 면모를 밝히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 노력의 과정을 우리는 수행이라 부른다. 그런데 연기적 사유로 볼 때, 수행은 성선설의 자율적 기획과 성악설의 타율적 기획이 어우러져야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생 면모를 제어하고 부처 면모를 살려주는 데 기여하는 타율과 제도를 십분 활용해야 자율적 향상에 힘이 쉽게 실린다. 자율과 타율을 쌍으로 쓰면서 변화로 이끌어가는 것이 방편의 묘미이다. ‘제도에 의한 사유와 행위의 제어와 변화’는 강력하다. 아무리 부실하고 불합리한 제도라도 훌륭한 인품의 지도자만 등장하면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생각은 연기적 접근이 아니다. <제도와 법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라는 생각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운영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해야 연기적이다. 부처님 사상에 상응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불교의 질적 도약을 위한 개혁은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종단의 소임자(들)이라면, 구도적 진정성이 있다면, 무엇보다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불교계의 이견과 역량들을 소통시키고 결집할 수 있는 ‘공론의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건성으로 다루면서 ‘불교발전’이나 ‘화합’을 운위한다면 누가 보아도 공염불이다. 그런 태도로는 소임의 의도나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킬 수가 없다.

<질적 기적을 추가하여 양적 기적에 의미와 가치를 새겨라>는 한국불교의 시대적 요청 앞에서, 교단 차원의 선택지는 두 가지일 뿐이다. 제도 차원의 개혁에 나서거나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안정이니 화합이니 하면서 문제를 덮는 것은 외면을 선택하는 것이다. ‘새 질서에 대한 열망’과 ‘구질서를 유지하고 옹호하려는 의지’는 적당히 섞어 나눌 수가 없다. 흑백 이분법이 아니라, 구질서와 신질서의 내용이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어서 그렇다. 한국불교의 질적 도약은 구질서의 연장선에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실의 이익지형이 반영된 선거법으로 보입니다.> -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 문제를 둘러싼 파행을 계기로 관련 제도와 법규를 살펴본 지인들이 전한 소감이다. <그 이익지형은 한국불교의 문중 계파주의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 지인들의 소감에 대한 필자의 대답이다. 문중(門中)은 공부 가풍의 계승과 도제 양성 및 지원이라는 순기능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중주의가 교단권력의 문제와 연관될 때에는 불합리한 정실주의와 당파적 패권주의의 근거지가 된다. 교단 운영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저해하는 강력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한국불교의 문중 계파주의는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이었건 결과적이었건 간에, 현행 교단권력 선출방식은 문중 계파주의의 이익지형에게는 최적화된 내용으로 보인다. 이런 제도와 법규를 부처님 가르침에 맞게 고치자는 요구가 부당하다면, 더 좋은 견해와 대안을 제시하면서 대화하고 설득하면 된다. 그런 대화와 담론과정을 건너뛴 채 화합할 수 있는 신묘한 방책이 있는지, 필자의 우둔함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오직 밀리지 않겠다는 투지로 대오를 지어 세력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너무도 반(反)불교적이다. 

교단이 기꺼이 제도개혁의 길을 선택할 때, 한국불교의 질적 기적은 가시권에 들어온다. 대중의 호응과 사회적 존경 속에 한국불교의 내적 역량과 사회적 역량은 기적 같은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활력과 역량은 한반도에 도래하는 새 질서와 어울리면서 지금껏 역사에 없던 만다라를 피워낼 수 있다. 그와 함께 북방전통과 남방전통에서 축적해 온 부처님 법에 대한 이해와 실험들이 열린 태도로 재음미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부처님과의 새로운 대화가 펼쳐질 것이다. 기존 교학에 간직된 보물들은 현재언어로 되살아나고, 거기에 새로움이 추가되어 또 하나의 불교 나이테가 형성될 것이다. 출/재가의 다양·다층의 역량들은 자신을 다채롭게 펼쳐낼 것이다. 지금 한국불교는 유례없는 황금시대를 여는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만약 교단이 개혁요청을 거부하고 곁가지 미봉책으로 구질서의 유지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개혁을 요구하던 불자들이 교단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는 데까지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교단은 소중한 역량들의 일탈로 내공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구질서 옹호자들은 개혁을 요구하는 불자들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직접 거리에 나서기까지 하는 열성 개혁불자들의 숫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불자들이 침묵 속에 개혁적 인식을 누적시켜 가고 있다. 출/재가를 막론한 이 침묵의 다수들이 교단에 비판적이고 냉소적이 된다면, 교단은 가장 중요한 내부역량을 상실하게 된다.

교단 개혁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접을 정도가 되면, 개혁을 열망하는 불자들은 기존 교단과 상관없이 독자적 역량으로 황금시대의 문을 열려는 행보에 힘을 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갖춘 세간 일상에 대한 경험적 식견과 경륜, 전문적 소양은 재가불교 공동체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가시화시켜 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새로운 유형의 ‘작지만 알찬’ 교단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불교에 대한 탄탄한 소양과 강한 구도적 진정성으로 결집하면서도, 선호하는 교학이나 수행론에서는 차별화되는, ‘가치와 이념 중심의 강소(强小) 교단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견실한 내용의 교단 다원화 현상은 한국불교의 향상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분열이 아니라 풍요한 다채로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터무니없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또 언제든지 그 허물을 치유할 수 있다. 반듯한 과거로만 채워진 인생이 과연 있기는 할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이후의 선택’이다. 이 선택의 자유공간이야말로 인간의 희망이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평가할 때는 무엇보다 지금 어떤 행위를 선택하는가를 기준 삼아라.> - 부처님 업설(業說)의 초점이자 의미라고 생각한다. 개혁을 요구하는 불자들에게나 그들의 비판대상들에게나 이 업설의 의미는 고스란히 유효하다. 행위의 자유공간에서 감동적인 선택이 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대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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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인 2018-10-22 13:57:13

    박태원 교수님 같은 불교 지성인들이
    많을수록 불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쓰시는 태도에
    존경심이 듭니다.   삭제

    • 구두선 2018-10-22 01:58:54

      양적으로 발전했으나 질적으로 부패타락한 조계종개혁은 끝났다 오직 이전투구뿐이다 문중파벌을 이용해 종권을 영원토록 장악한 수구보수승려집단 개혁리더가 없다 누가 반개혁종단을 물리칠수 있나 구두선이다   삭제

      • 포랭수 2018-10-21 12:32:04

        자신을 끊임없이 개혁해서 해탈 열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개혁이리   삭제

        • 시대 2018-10-20 13:01:23

          성악설과 성선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잘버무려 주시니 글이 단풍처럼 아름다워요...
          그런데 새집행부가 알아들을것 같지 않으니 노파심만 깊어질듯...   삭제

          • 불자 2018-10-19 20:33:16

            문재인대통령 참석 한반도 평화위한 교황청 미사
            공중파에서 생중계한거 범계종에서
            종교편향 훼불해종행위라고 논평냈다가
            오히려 분단적폐 세력으로 몰려 비난댓글 몰려
            https://news.v.daum.net/v/20181019152152620?f=m   삭제

            • 혜의 2018-10-19 17:06:52

              조계종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포기의 대상이라는 말이 나온지 벌써 몇년이나 지났는 것을 필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부디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붓다의 유훈을 되새기며 개혁행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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