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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정사(臥牛精舍), 이국적 사찰의 등장?
  • 우혜란_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
  • 승인 2018.11.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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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와우정사. 사진=용인시.

지난 늦여름, 오랫동안 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던 (용인) 와우정사(臥牛精舍)를 드디어 동료와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그림자 하나 없는 뜨거운 정오의 햇살 아래,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와우정사는 실사(實寫)처럼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디인가 머무는 듯하였다. 사찰의 경계를 알리는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이, 단지 커다란 연못 가장자리에 높이 세워진 태국 왕실이 기증했다는 8m 높이의 금빛 불두(佛頭)가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내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각국에서 수집한 3,000여 점의 불상을 전시하고 있는 ‘세계만불전’이 있고, 그 뒤편에 –주지 스님이 출처를 끝끝내 말하지 않은- 에메랄드 부처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경내 왼쪽 언덕길의 한쪽은 각국의 성지와 전국에서 가져온 돌로 주지 스님이 손수 쌓았다는 돌탑들이 세워져 있고, 다른 한쪽은 네팔 정부가 기증한 황금 불상이, 그 위쪽 평지에는 태국 왕실에서 선물한 10톤짜리 금동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뒤쪽 토굴에는 인도 스님이 기증한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만든 12m 길이의 세계 최대라는 와불(臥佛)이 모셔져 있다.

와우정사(1978~)의 창건주는 김해근 법사(현 해곡 스님)로, 그는 대한불교열반종(1991~)을 창종한 인물이기도 하다. 와우정사는 한국불교열반종의 총본산이라는 것 외에도 세계불교문화교류협회 본부 그리고 세계불교도총연맹 본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와우정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시아불교의 다양한 요소를 자신들의 사찰 건축과 경관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동남아시아 관광객들 –30만 외국인 관광객 중 20만이 태국인– 에게 새로운 성지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와우정사는 ‘불교의 세계화’라는 동시대의 상황에서 필자의 주요 연구과제인 ‘불교 물질문화’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찰건축의 변화는 와우정사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 불교계에서 조용히 진행되어 왔다.

인덕원 (조계종) 삼천사는 오대산 월정사의 8각9층탑과 (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에 소재한) 아소카 석주의 4두(頭) 사자상을 접목하여 15m 높이의 ‘세존 진신사리 4사자9층석탑’을 이미 1988년에 건립하였다. (조계종) 대원사는 2001년 티베트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2002년 티베트식 불탑인 15m 높이의 수미광명탑을 건립하였으며, 불탑의 상륜부 첨탑과 11면 천수관음상을 모시는 감실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협조로 인도에서 특수 제작되어 한국에 보내진 것이다. 대한불교영산법화종 또한 2007년 경기도 양주에 인도의 전통적인 스투파 양식을 따른 ‘세계평화불사리탑’을 건립하였다. 용인의 (조계종) 보문정사는 세계적인 불교 유적인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와 동일한 형태의 ‘세계평화 황금탑’의 설립을 2013년부터 미얀마 불교계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대각법화회(世界大覺法華會)의 법화정사는 2014년 중창 불사에서 미얀마 만달레이에 소재한 마하무니 사원의 불상과 동일한 형태의 불상을 봉안한 바 있다. 이들 사례는 한국 사찰의 건축적 변화는 불사리탑에 집중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아시아의 타 불교권으로부터 새롭게 모셔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와우정사가 네팔 정부가 기증한 불상을 모시기 위해 네팔 최대의 사원인 보우더나트 사원을 본뜬 조형물을 세우고, 태국 왕실이 기증한 불상을 모시기 위해 태국 양식의 건축물을 세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새로운 술은 새로운 포대에”라는 원리가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이국적인’(exotic) 한국 사찰의 등장은 한국 불교계와 타 아시아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특히 동남아시아– 불교계의 연대/교류가 강화되면서, 한국의 일부 사찰이 불교를 범아시아적(Pan-Asian) 전통으로 재확인하고 이를 자신들의 사찰 구성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실험’을 시도하는 한국 사찰은 소수이다. 해곡 주지 스님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와우정사를 조계종단 사찰로 등록하였다면, 그리고 더더욱 전통사찰이 되었다면, 현재와 같이 다양한 나라의 불상을 모실 수 없었을 것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불탑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 발언이 말해주듯 ‘전통’의 무게에서 자유로운 한국 사찰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서 주지 스님은 자신은 실향민으로 지난 40년 동안 한 조각 한 조각 근처 토지를 사들여 사찰을 넓히고, 각국 성지와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돌들로 오직 ‘통일’을 염원하며 홀로 불탑을 쌓았으며, 자신의 불사는 모두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잠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세계화’를 말하며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우리가 조선 시대 혹은 고려 시대 사찰을 지어야 하는가 반문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사찰은 궁극적으로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함이라고 강조하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논문 제목이 스쳐 갔으나 그것도 잠시… 필자는 늙고 야윈 스님의 무릎 위에 놓여 있는 거친 손마디와 그의 얼룩진 소맷단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 글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548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우혜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논문으로는 〈성물(聖物), 전시물, 상품: 진신사리의 현대적 변용에 대하여>, 〈종교문화콘텐츠에 대한 또 다른 ‘종교학적’ 접근〉, 〈젠더화된 카리스마〉,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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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2018-11-16 12:18:37

    와우정사 혜곡스님의 지극한 신심은 다른 승려들이 본 받아야 합니다
    피골이 상접해 기운이 없는데도 한시도 쉬는 모습을 못 봅니다
    불교 포커스에서 좋은 소식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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