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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오해를 넘어 행복한 착각으로
이 기고문은 필자가 동산불교대학에서 2018년 가을강좌로 ‘맛지마 니까야-마음을 맑히는 경’을 진행해온 소감으로, 동산소식지에도 함께 실림을 밝힙니다.

불교 나이가 대략 2600살이 넘습니다. 2600여 년 동안 불교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쌓이고 모이고, 헤쳐모여를 반복하며 오늘까지 흘러왔을까요?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책 몇 권이 나온다고 으스대는데, 그러니 2600살이 넘은 불교는 어떻겠습니까?

한 지역에서 오롯하게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아니고 인도에서 시작해서 중동지역을 살그머니 거쳐 저 광활한 동북아시아를 향해 힘찬 여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더운 동남아시아에서도 현재까지 활발하게 숨을 쉬고 있는 불교입니다. 그러니 “이것만이 불교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려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불교를 말하기도 하니까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대부분이 무리 없이 통하지만 아직 공부가 무르익지 않은 사람들은 헷갈립니다.

“여기 불교랑 저기 불교랑 왜 이렇게 다른 거야?”
이런 궁금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결국 “아, 몰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경전읽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전에는 다 부처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마음’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또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대중 앞에서 법문을 베푸시다가 문득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고 하지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부처님이 왜 갑자기 연꽃을 드셨는지 그저 어리둥절했을 뿐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엷은 미소를 띤 것으로 보아 부처님은 무척 행복하셨던 듯합니다. 연꽃을 집어든 이유를 이토록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섭만큼은 알아차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온 세상 수많은 언어로는 제대로 전할 수 없고(敎外別傳), 부처님처럼 수행해온 사람만이 부처님 마음을 제 마음으로 고스란히 알아차리는 것(以心傳心)이 불교려니 하는 것이 선불교요, 이 오묘한 마음이라는 난제 앞에 “난 중생!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건 포기!!” 이렇게 선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지독한 오해인지 모릅니다.
부처님은 평생 ‘말씀’으로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당신께서 길게 설명하시기에 좀 벅찬 상황이면 당신의 제자에게 넌지시 이르십니다.
“내가 등이 좀 아파서 쉬려고 하니, 사리불이여(혹은 아난이여)! 그대가 저들에게 조금 더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을 하신 분입니다.
“내가 눈을 감기 전까지 궁금한 것은 다 물어보아라. 행여 주저하다가 훗날 ‘아, 그때 스승에게 여쭐 것을…’ 하며 아쉬워하지 말라. 어서 물어보아라. 뭣이든 다 물어보아라.”
제자들은 온갖 것을 다 여쭙다가 차츰 시간도 너무 지났고, 늙은 스승님(세존)께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아서 그만 침묵하고 맙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부처님, 그때 하신 말씀을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질문 없습니까?” 였지요. 그리고 마지막 당부를 하신 뒤에 깊이 선정에 잠기셨다가 반열반하셨습니다.

말씀에서 시작하여 말씀으로 끝난 부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말씀을 일일이 만나보고, 자꾸 읽어보고, 곰곰 따져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겠습니다. 경을 읽으면서 ‘이 문자 너머에 있는 부처님 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진짜일 텐데…,’라는 생각을 일으킬 필요는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부처님 마음이 부처님 말씀으로 담겨서 문자로 기록된 것이 경이요, 수많은 경 가운데 가장 앞에, 가장 밑에 놓여야 하는 경이 바로 ‘니까야’(‘아함경’)입니다. 경을 읽으려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이 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그간 동산불교대학에서 제게 시간을 주신 덕분에 여러 도반님들과 ‘맛지마 니까야’를 감상해왔습니다. 그 강좌의 이름은 ‘마음을 맑히는 경’이었습니다. ‘공부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부처님 마음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한번 초기경전을 읽어봤으면 하는 제 바람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알고 싶고 깨닫고 싶고 훨훨 자유롭고 싶은 제 마음, 중생 마음이 바로 오래 전 부처님 마음이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가 초기경전을 읽는 자리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자꾸 하게 됐고, 그래서  ‘맛지마 니까야’에서 몇 개의 경을 추려서 부처님 마음을 만나봤고, 내 마음을 비쳐봤습니다. 좋은 구절 한 마디에 쿵~하는 울림이 오기도 했고, ‘아하!’ 하는 번뜩임도 찾아왔습니다.

「버리고 없애는 삶에 대한 경」에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먼저 진흙에서 빠져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진흙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네가 진흙탕에 빠져 있다면 다른 이를 구할 수 없다.”라고요. ‘나의 깨달음’을 강조하지만 내가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지요.

또한, 「말룽끼야뿟따에 대한 작은 경」에서는 개념만이 즐비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부처님이 답을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은 지금 당장 그대에게 찾아온, 그대를 늘 괴롭히는 현실적인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선언하였고, 「밧달리경」에서는 ‘행여 계율을 어긴 도반을 꾸짖더라도 그가 만일 승가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면 그의 잘못만을 지적해야 할 일이지, 그의 마음에 있는 믿음과 사랑의 척도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또 이 경에서는 승가 규모가 커지고 세상의 공양이 몰려서 이익이 커질수록, 붓다의 가르침을 번쇄한 학문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커질수록,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켜켜로 쌓일수록 승가에는 계율이 더욱 필요하다는 부처님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짜뚜마에서 설한 경」에서는, 부처님을 친견하러 온 새내기 수행승들과 그들을 이끄는 사리불, 목련존자를 부처님께서 “시끄럽다!”며 쫓아내시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하지만 재가자와 하늘의 신이 간곡히 요청해서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이후에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서 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고 당부하시는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그 오래 전 부처님 회상에 함께 머물렀던 즐거운 착각까지 일으켰습니다. 틀림없이 부처님도 늦은 시각, 집에서 편히 쉬기보다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찾아온 여러분들을 “장하고 장하다!”라며 진정으로 따뜻하게 맞이해서 법문을 베풀어주시고 격려한 뒤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하셨으리라 저 혼자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그 행복한 착각과 짐작-뭐 어떻습니까? 그 맛에 경전을 읽는 것이지요. 그 맛에 우리는 또 오늘과 내일을 힘차게, 선하게, 지혜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지요. 연꽃 한 송이에 빙그레 웃었던 가섭존자님도 바로 이 맛을 아셨을 겁니다. 어쩌면 그게 바로 부처님 마음 아닐까요? 한 학기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이/미/령/의/사/람/이/經/이/다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 사람씩 만나보려 합니다. 인물 하나가 경 하나입니다. 사람보다 더 귀하고, 사람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연재 제목도 ‘사람이 경이다’로 정했습니다.

경전번역가, 불교 칼럼리스트, 책 칼럼리스트, 불교교양대학 강사. 불광불교대학, 동산불교대학, 대전보현불교대학, 등에서 불교강좌를 맡고 있고, 현재 BBS 라디오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 ,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이미령의 책잡히다> 를 진행중이다. 책읽기 모임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대안연구공동체의 직장인 책읽기반 등을 열고 책읽는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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