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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동굴과 붓다와나[연재]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15

이번에 소개할 곳은 우리나라의 불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곳일것 이다. 부처님과 빔비사라왕이 만난 제티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수라동굴이 있다. 아수라 동굴(Asura cave)은 제티얀에 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산밑에 있는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초등학교에 도착하면 당연히 동굴을 찾아온줄 알고 안내하는 이들이 있다.

이번 순례길에도 차 트렁크에 과자를 두 박스 사서 실었다. 시골에서 만나는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 돈보다 과자를 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되서다. 댓가없이 돈이나 과자를 주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가이드 디빡 아난다(Deepak Ananda)의 충고가 있었지만 서로가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댓가를 요구할 수 있을까?

물소를 타고 노는 아이들

인도의 시골을 순례를 하다보면 두려운 듯 궁금한 듯 맨발로 뛰어 나와서 방문객을 바라보는 시골 아이들을 어디서나 만나게 된다. 우리일행이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보드가야에서 만나는 아이들처럼 구걸을 하지 않았지만 외지인이 낯설지 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내가 만나본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악착같은 아이들은 부처님의 6년고행터에 위치한 '수자타템플' 주위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부처님이 우유죽을 얻어마신 곳이라고 '수자타템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마음씨좋은 수자타는 없고 놀부나 놀부 마누라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곳이다. 그 사찰의 운영자는 불교인이 아니다. 불자들이 수자타가 우유죽을 공양한 곳을 찾아 오니까 힌두템플 밖 나무를 중심으로 수자타가 우유죽을 올리는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 곳이 수자타템플이다. 그런곳이어서 그런지 이곳의 아이들은 순례객들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우리가 아수라동굴로 오르기 위해 초등학교에 도착하자 반얀나무아래서 물소등을 타고 놀던 아이들은 소등에 누워서 우리를 쳐다 보았다. 세 명이 한 마리의 소를 타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수라동굴을 오르기 시작하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청년과 어른과 아이들 10여명이 나타나 우리들을 안내했다. 산중턱에 올랐을 때는 대여섯명이 늘어나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도 산에 볼일이 있어 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파른 곳에서는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우리가 동굴에 도착하여 참선할 때 반대쪽에 앉아서 우리만을 구경하는 이들을 보니 우리 때문에 산에 오른 것이 분명해보였다. 산을 중간쯤 올랐을 때 길가에 집채만한 멧돼지가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멧돼지 사체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얼마나 지독한지 우리는 호흡을 멈추고 그 곳을 빠른 걸음으로 통과해야했다.

목적지에 다다랐다. 동굴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우리가 오기전날 일본인 그룹이 다녀갔고 그 전에는 태국불자와 베트남 불자들이 다녀갔다고 마을 가이드가 이야기해 주었다. 아수라 동굴에 대해 현장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산벽(山壁) 석실은 매우 넓어서 천여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옛날 여래께서 재세시 이곳에서 석 달 동안 법을 설하셨다. 석실 위에 커다란 반석이 있는데, 이것은 제석과 범왕이 우두전단을 빻아서 부처님의 몸에 바르고 장식하였던 곳으로 돌에는 남은 향기가 지금도 풍기고 있다. 석실의 서남쪽으로 암굴이 있는데, 인도에서는 이것을 아수라궁전이라고 한다.”_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중에서

아수라 동굴

현장의 증언처럼 동굴안에 천명이 들어차도 될 것 같았고 동굴 중앙에는 전단향을 빻는데 사용했다는 커다란 반석이 있었다. 동굴안으로 들어가니 현장이 이야기한 암굴이 있었는데 히터를 틀어놓은 것처럼 열기가 후끈거렸다. 이렇게 열기가 감지되기 때문에 아수라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나보다. 마을 가이드들은 박쥐들 때문에 더운 것이라고 했다. 아수라 동굴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우리나라 명당의 그것처럼 툭 터져있어 호방하면서도 앞에는 일(一)자 산등성이가 감싸고 있어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산등성이에 둘러쌓인 너른 들판과 연못은 그 자체로 삼매에든 듯 했다. 현장스님의 기록처럼 동굴에 오르기 위해 계단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산을 내려와서 우리는 가져간 비스켓을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늦게 나타나 비스켓을 못 받은 아이 한명이 줄기차게 차를 따라서 달려왔다. 포기하지 않고 큰 길까지 달려온 아이에게 십루피를 주었다.

제티얀에서 아수라동굴은 왕복 2시간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아수라동굴을 방문하려면 반나절의 시간을 할애 해야한다. 현장은 아수라동굴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옛날에 일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好事者]이 있었는데, 그는 주술에 깊이 통달해 있었다. 그를 포함한 열네 명의 동료들이 뜻을 함께 하여 약속을 하고 이 암굴로 들어갔다. 그런데 굴 안이 갑자기 크게 밝아지면서 성읍과 누각이 보였는데, 이 모든 것은 금·은·유리로 만들어졌다. 이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여러 소녀들이 문 옆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그들을 기쁘게 맞아들이며 융숭한 예로 접대하였다. 이에 점차 앞으로 나아가서 성 안에 이르렀는데, 성문에는 두 명의 하녀가 각자 금쟁반을 받쳐 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온갖 꽃과 향이 넘치도록 담겨 있었는데, 그들은 이 쟁반을 들고 기다리며 있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말하였다.

"연못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시고 향을 바르고 꽃을 머리에 꽂으신 후에 들어가신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직 저 술사(術士)만큼은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소서."

 그리하여 남은 열세 명이 목욕을 하려고 못에 들어가자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혀 그대로 마치 모든 것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듯하였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논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자신들을 발견하였다.”_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중에서

제티얀에서 남서쪽으로 7km쯤에 부처님의 숲이라고 이름하는 '붓다와나(Buddhavana)'가 있다. 이곳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멀리서 보기에도 아름다운 산이다. 차를 타고 산으로 다가갈수록 아름다움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급기야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연못과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산밑에 도착하자 마을사람들이 환영이라도 하듯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지 아이들중 몇몇은 수줍게 루피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마침 우리가 찾아간 그날 산에서 새로운 불상을 발견했다고 하는 아이가 있어 가이드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 아이에게 상금을 주고 칭찬하는 행사를 가졌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유물을 발견했다는 아이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현장스님은 붓다와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붓다와나

“산봉우리와 절벽이 높이 우뚝 솟아있고 벼랑은 한없이 깊다. 바위 사이에 있는 석실은 부처님께서 일찍이 이곳에 오셔서 머무셨던 곳이다....이곳에는 오백 명의 나한들이 보이지 않게 깃들어 있는데,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사람이면 이따금 오백 나한을 보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미의 모습을 하고 마을로 들어가서 걸식을 하는데, 나타났다가 숨는 그 신비하고 영묘(靈妙)한 자취는 일일이 기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_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중에서

이곳에 오백나한이 깃들어 사는 이유가 이곳 경관이 아름다워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든다. 언젠가 이곳에 나한을 모시는 사찰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바위사이에 있는 석실은 크고 넓었지만 높이는 낮았다. 석실에 들어가 앉아있으니 전망이 좋고 편안하고 시원하여 나오기가 싫었다. 가이드는 석실옆에 나뒹구는 벽돌조각을 보여주며 이곳에 큰 탑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이 곳 뿐만이 아니라 이 산 곳곳에는 수투파의 흔적인 벽돌조각이 있다. 

촌장집에 있는 불상 조각

이 마을의 촌장집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문화재를 지키는데 남다른 정성을 보였다. 깨진 파편이지만 불상조각이 인상적이다.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 촌장에게 격려금을 주려고 했더니 촌장은 손사레를 치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다시 방문해 달라는 말만 여러번 하였다. 인도에 와서 돈을 거절하는 인도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붓다와나와 아수라 동굴은 순전히 현장스님의 기록에 의거하여 발견된 곳들이다. 유적지에 남아있는 벽돌이나 깨진 불상들로 이곳에 수투파나 사원이 있었음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유적의 이름이나 얽힌 사연은 현장스님의 기록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현장스님의 기록에 의거하여 새로운 성지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당서역기라는 책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순례를 할수록 놀라움은 커진다. 현장스님은 제티얀 근처에 온천(Tapovana)에 대해서도 언급해 놓았다. 온천은 라지기르 쪽으로 산언덕을 넘으면 나오는 작은마을근처에 있는데 지금도 따듯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온천물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한다. 빨래를 많이 한 탓에 고여있는 물은 깨끗하지 않고 온천 주위가 지저분해서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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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커스독자 2018-11-24 12:09:54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 촌장에게 격려금을 주려고 했더니 촌장은 손사레를 치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다시 방문해 달라는 말만 여러번 하였다. 인도에 와서 돈을 거절하는 인도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 인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 포함이겠죠?
    맨날 문화재 소장빌미로 돈뜯어내는 불교행태만 보다가
    이렇게 무주상보시로 문화재지킴이 하시는 분 만나뵈니
    감동이 더큰가 봅니다   삭제

    • 푸하하 2018-11-24 11:34:09

      마음씨좋은 수자타는 없고 놀부나 놀부 마누라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곳이다. 그 사찰의 운영자는 불교인이 아니다.

      ==> 왜 한국불교 관람료사찰들 행태와 그렇게 비슷할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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