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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금란가사를 입으셨다고?
  • 박호석 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18.11.28 22:30
  • 댓글 2

한때, 세존께서 나디까 긴자까와싸타 승원에 계실 때, 제자인 아루눗다, 난디아, 그리고 낌빌라 존자가 인근의 고씽카 쌀리와나 동산에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제자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동산으로 찾아 오셨지요. 그런데 동산을 지키는 산지기가 부처님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사문이여, 이 동산에 들어오지 마시오. 여기에는 영혼이 자유로운 훌륭한 세 분이 머물고 계십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마시오.” (<맛지마니까야> ‘고씽카 경’)

산지기가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부처님 제자들의 공부가 방해될까 염려되어 스승의 출입을 막은 것이지요. 이와 똑같은 일이 바찌나방싸 동산에서도 있었습니다.(<맛지마니까야> ‘번뇌에 관한 경’) 이처럼 사람들이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은 다른 경전에도 나타납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마가다국을 유행하시다가 라자가하에 당도하여 도공인 박가와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뿍꾸싸띠라는 비구가 세존보다 먼저 와서 그 집에서 묵고 있었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비구여, 괜찮다면 하룻밤을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고, 뿍꾸싸띠는 ‘도공의 집이 넓으니 존자께서는 편하게 머무십시오.’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풀을 깔고 정좌하시자 뿍꾸싸띠도 건너 쪽에서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비구여,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스승은 누구입니까?”
“싸끼아족에서 출가한 고따마 사문이십니다. 사왓띠에 계신데 뵌 적은 없습니다.”

 
세존을 뵌 적은 없지만 스승으로 생각하고 사문으로 살던 북꾸싸띠가 그날 밤 부처님을 처음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부처님으로부터 육계(六界)와 육처(六處)에 대한 설법을 들은 북꾸사띠는 이내 이 분이 자기가 받들던 스승임을 알아차리고는, 앞서 부처님을 ‘존자’로 부른 것을 참회하였습니다. (<맛지마니까야> ‘육계분별경’)

또,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망고나무숲에 대중들과 함께 계실 때, 마가다 국왕인 아자따쌋뚜가 포살일에 부처님을 찾아와서는 ‘어느 분이 세존이냐’고 신하에게 묻는 장면이 <디가니까야>에 나옵니다.

사진=픽사베이.

그런데,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같으면 바로 부처님을 금세 알아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산지기들, 뿍꾸싸띠, 그리고 마가다 국왕은 부처님을 보고도 몰랐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부처님을 구별하는 안목이 없어서가 아니고, 세존의 행색이 다른 스님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도 그냥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32가지 별난 모습을 가지셨더라면, 아니 32가지는 고사하고, 튀어나온 머리, 눈썹사이에 흰 털, 황금색 피부, 무릎에 닿을 만큼 긴 팔 가운데 어느 한두 가지 모습만이라도 갖추었더라도, 누구나 단박에 부처님을 알아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32상이란 당시 인도에서 신화적인 존재인 전륜성왕이 갖추어야 하는 상징적인 신체적 특징을 성인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32상을 모두 갖춘 모습을 그려보면 이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 듯해요. 그런데 우리가 이를 그대로 믿고 신성시한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 지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참으로 인자하고 자상하고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지 유별나게 대우받거나 나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스님들과 똑같이 날마다 마을로 나가 일곱 집을 돌아 탁발하시고, 공양을 마치시면 설거지를 손수하시고, 설법하고 토론하실 때면 제자들과 함께 둘러앉으셨지요. 박가 국의 보디 왕자가 새로 지은 궁전의 계단에 깐 흰 카펫이 호화스러워 차마 밟지 못하시는가 하면, 병든 제자가 안쓰러워 손수 목욕시키시고, 먹을 것이 없어 목동들에게 얻은 말먹이로 안거를 나신 분이 바로 세존이십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백성들과 함께, 그들의 방식대로 차별 없는 삶을 사셨기에 우리가 더욱 존경하고 우러러 받드는 것이지요. 수천의 대중을 이끄신 법왕(法王)이시지만 세존께서는 황금수레를 타거나, 수라를 받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불교에서는 부처님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법의 표시로 당신의 금란가사를 전했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합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닌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이는 부처님을 모욕하는 말임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즈음에는 종파의 대표라고 부처님도 하지 않은 금란가사와 보관(寶冠)으로 치장하고 제왕처럼 으스대는 승려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비불교적인 한국불교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의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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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형균 2018-12-06 19:25:04

    불교지원금 전달식에서 뵈었네요.
    쓰신 글처럼 스님들이 금란가사를 입고 보관을 쓰고...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를 망치는 것이 오히려 저러한 스님들이 아닐까 합니다.   삭제

    • 분소의 2018-11-29 04:07:03

      부처님은 똥걸레를 세탁한 분소의가 의복이다라는 말은 거짓인가 누런 누더기가 황색으로 변했고 황색은 찬란한 금색으로 변했다는 것은 상징이다 금란가사는 후세에 왕사국사가 입던 법복이다 승려법복은 금색이 아닌 황토색과 밤색이다 남방불교의 금색은 불교국가로서의 위엄이고 국교가 아닌 북방불교는 황토색과 밤색이 맞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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