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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르 석굴을 가다[연재]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17
  • 허정스님_ 전 천장사 주지
  • 승인 2018.12.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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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바라바르’를 ‘바라바’로 오해했다. 그 오해 때문에 동굴이름이 깊이 각인되었다. 부처님도 이 곳에 서서 마가다국을 바라보셨다고 하니 “바라바산에서 마가다국을 바라바!”라는 농담을 재미있게 해댔다. 바라바르((Barabar)석굴은 보드가야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장스님은 파트나에서 가야로 내려오는 길에 이 곳을 들렸는데 수많은 바위가 늘어선 바위산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암석이 늘어선 것이 마치 신선들이 기거한 곳과 같다. 독사와 포악한 용이 덤불 속 굴에 살고 있으며 사납고 거친 금수들이 그 숲 속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로마스 석굴 입구

이 곳에서 부처님이 멸진정(滅盡定)에 드셨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산 정상에는 10여척에 달하는 수투파가 세워져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산의 동쪽에서 부처님이 마가다국을 그윽히 돌아다 보셨던 곳이라고 한다. 현장스님과 마찬가지로 바라바 산에 가까이 가자 눈앞에 펼쳐지는 바위산의 장관에 우리는 함성을 터트렸다. “인도에 이런 곳이 있었네!“ 주위에는 온통 둥근 바위들만 보였다.

아소카왕이 아지와까 수행자들에게 만들어 보시했다는 동굴들을 보기위해서는 바위산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현지가이드를 고용했다. 아무래도 이 곳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는 가이드의 도움이 필요할 듯 싶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산을 오르는데 커다란 바위에는 사람 보폭에 맞춘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아소카왕을 위해서 만들어진 계단이다. 주위에서 부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천하의 아소카왕도 여기서는 혼자 힘으로 가파른 산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산에 오르니 악어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길게 드러누워 있다. 아소카왕은 이 악어의 한쪽 옆구리 2개 다른 쪽에 1개의 석굴을 팠다. 직사각형의 단순한 구조를 가진 석굴들은 왕사성에 있는 손반다르석굴과 크기와 형태가 비슷하다.

빔비사라왕의 보물창고였다는 그 석굴을 모델로 이백년후에 이 석굴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든다. 이 곳 석굴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석굴은 출입구에 보리수잎 모양을 새긴 것인데 보리수잎 끝에는 사리함이 조각되어 있다. 목조건축양식으로 조각된 창문아래에는 좌우에 코끼리 다섯 마리가 중앙의 사리함을 향해서 걷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입구를 가진 석굴이름은 로마스 리쉬(Lomas Rishi)이다. 이 석굴은 그러나 완성작이 아니다. 아마도 천정에 보이는 굵은 틈새가 이 동굴을 계속 파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방안에 앉아있는데 천정에서 빗물이 줄줄 샌다면 석굴을 만든 보람이 없을 것이기에.

석굴의 내부

로마스 석굴 옆에는 아무런 치장이 없는 수다마(Sudama)석굴이 있다. 석굴의 표면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거울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 반짝이는 동굴이 지금으로부터 2300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니... 이 석굴입구에는 브라흐미 문자로 “신들의 사랑을 받는 왕은 왕에 즉위한 뒤 12년째에 이 동굴을 아지와까(Ajivika)에게 바친다.”라고 새겨져 있다.

아소카왕이 룸비니를 방문한 것이 즉위 20년째 였는데 룸비니보다 8년 일찍 이 곳에 와서 석굴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즉위 12년은 아소카왕이 불교로 개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칼링가 전쟁이 일어난지 4년후가 된다. 아소카왕이 이 석굴들을 불교승려가 아닌 막칼리코살라의 후손인 아지와까들에게 봉헌하였다는 일찍이 '자신의 종교를번영하게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종교를 칭찬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종교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아소카왕의 사려깊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수다마 동굴의 반대편에 있는 까란(Karan)동굴에는 아소카왕이 즉위 19년째 방문했다고 새겨져 있다. 석굴은 둥근천장을 가진 직사각형의 큰 방이 있고 그 옆에는 둥그란 원형의 작은 방이 있다. 큰 방에는 백명정도가 들어올 수 있고 작은 방에는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다. 작은 방은 스승이 머물던 방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방은 약간 답답한 느낌이다. 석굴이기에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크게 울린다. 우리는 외우는 반야심경이 천상의 소리처럼 장엄하였다. 석굴입구로 햇살이 들어와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석굴 안에 있는 사람은 마치 현실 같은 꿈, 매트릭스 같다. 석굴은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이 석굴들은 수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행처였을 것이다.

밖에서 바라본 수다마석굴과 로마스석굴

이 바라바르산에는 총 네개의 석굴이 있다. 그리고  2km정도 떨어진 동쪽에도 직사각형 모양의 석굴이 세개 더 있다. 그 곳을 나가르주나산이라 부르는데 그 석굴들은 아소카왕의 아들인 다사라타(Dasharatha) 왕에 의해서 만들어져 기증된 것이라고하는데 누구에게 기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장스님이 보았던 산 정상의 10여 척 높이의 수투파는 사라지고 없고 그 자리에는 힌두교사원이 세워져있다. 부처님이 그 곳에서 머무시면서 탁발하시고, 어느날은 마가다국을 그윽히 돌아보시고, 멸진정(滅盡定)에 드셨다는 사실들은 까마득히 잊혀져버려 버렸다.

다만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뿐이다. 이 곳은 인도의 석굴사원의 시초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바르바르 석굴의 소박하고 단조로운 형태는 기원후에는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같이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석굴로 발전하게된다. 바라바르 바위산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가장 오래된 석굴들과 산정상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은 지금도 인도인들을 이곳에 불러모으고 있다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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