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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곁에 없어도 현장법사는 빛났다첸원중의 <현장서유기> (임홍빈 옮김/에버리치홀딩스)를 읽고
실크로드 전경. 사진=픽사베이.

마침내 <서유기>10권을 읽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함께 책을 읽어온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 벗들과 모진 결심을 했지요. 사실 모진 결심이라고 했지만 책은 그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술술 읽혔습니다.

서유기라니….
오래 전 만화책으로 만나 홀딱 반했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영화로도 여러 차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이야기이지요.

불교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손오공의 활약이 흥미롭고, 툭툭 튀어나오는 요괴들의 등장에 가슴을 졸이곤 했지만, 불교 세계에 몸을 담고 몇 해를 살아가면서 어느 날 문득 ‘오공이란 이름이 좀 흥미롭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그 어렵다는 공(空)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사오정의 ‘오정’은? 저팔계의 ‘팔계’는?

그 이름들이 하나같이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니 나도 참 어지간합니다. 물론 삼장법사는 인도로 구법순례길에 올랐다가 돌아온 실존인물이란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동국역경원에서 <대당서역기> 번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번역을 마쳤고, 실력 좋은 분들의 윤문과 증의 덕분에 책이 나왔을 때 그렇게나 뿌듯할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벗들과 <서유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새삼 느끼게 된 점은, 삼장법사가 그렇게 찌질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스님. 하지만 용서해주세요. 작품 속에서 스님의 캐릭터는 정말 그랬단 말입니다.

연약하고 유약하고, 겁은 많고, 그러면서 원리원칙은 내세우고, 잘 속고, 잘 믿고, 자존심은 세지만 제 힘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나가지 못하는 캐릭터가 바로 <서유기> 속 삼장법사였습니다.

툭하면 당나라 스님고기 삶아먹겠다고 덤벼드는 요괴들에게 붙잡히고, 그나마 스승님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손오공에게 온갖 성질은 다 부리고….

소설 속에서 이런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으니 함께 읽던 책벗들에게서 “너무해요. 삼장법사, 어쩜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라는 불평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소설은 그저 소설로 읽으면 그만이라고 넘겨버리고 싶지만 <서유기>를 중간 정도 읽다보니 정말로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스님이란 인물이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에는 스님 자체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을 찬찬히 읽어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한데….

그러다 책꽂이에 꽂혀서 먼지를 쓰며 낡아가고 있던 책 한 권을 찾아냈습니다. 중국의 학자 첸원중이 쓴 <현장서유기>입니다. 어느 날 한 며칠 호되게 몸살을 앓고 나서 나도 모르게 공부방 책꽂이 앞으로 걸어가서 뽑아든 책입니다. 668페이지의 제법 두툼한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고, 그 재미에 빠져들어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고,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갈 때도 들고 나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읽어갔고, 그렇게 완독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의 불교학자 첸원중 교수가 중국 CCTV 학술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2007년도에 강의한 내용 36편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첸원중 교수는 <서유기>를 읽으면서 현대인들에게 현장법사가 연약하고 비겁하고 엄살쟁이로 각인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순례길 도처에 도사린 위험들이 오죽했겠습니까. 현장법사는 그 난관을 목숨을 걸고 헤쳐 나갔습니다. 손오공 같은 제자가 있었다면 무슨 문제였을까요? 하지만 실제 그의 순례길에 근두운을 불러 타고 여의봉을 귓속에서 꺼내어 마구 휘두르며 천상과 지옥의 신중들을 쥐락펴락하는 호위무사는 없었습니다. 국경을 몰래 건너는 일부터, 바다라 불러도 좋을 망망한 강과 호수, 그리고 새도 날아다니지 않는 사막을 현장법사는 때론 여러 사람과 그리고 때론 홀로 지나야했지요. 때로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고, 때로는 은밀히 빠져나갈 방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첸원중 교수의 책 <현장서유기>는 손오공이 없는 실존인물 현장법사의 ‘서유기’입니다.

내가 이 책에 흠뻑 빠져든 이유는 저자의 설명 때문입니다.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현장법사와 함께 훑으면서 그 길에서 만나는 온갖 역사적 사실을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술술 풀어줍니다. <대당서역기>를 번역하면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내용들이 이렇게 살갑게 다가올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현장법사는 참 어려운 교학을 공부하신 분이고, 그 원본을 구하려는 장한 뜻을 내신 분인 만큼 대승 논서에 대한 설명도 빠져서는 안 되는데, 이 설명이 너무나 쉽게 베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기원후에 인도에서 벌어진 대소승 논쟁은 물론이요, 인도 날란다 대학에 머물던 현장스님이 벌였던 몇 차례 논쟁까지, 저자는 그 어려운 이야기들을 마치 할머니가 호랑이 담배 피던 사연을 풀어놓듯이 술술 풀어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공부해야 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게 될까요.

저자는 현장법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설 <서유기> 속에서 현장스님의 이미지는 비교적 야무지지 못하고 칠칠치 못한 상격에, 그저 손오공을 속박하는 주문을 막힘없이 줄줄 외우는 것만 빼놓고, 말주변은 그렇게 썩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속의 실제 현장스님은 성격이 아주 굳세고 강할 뿐 아니라, 남한테 지는 것을 결코 쉽사리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자는 천축 구법여행을 마치고 거의 20여 년 만에 당나라로 돌아온 현장법사가 당태종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역경에 힘쓰던 일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스님을 환속시켜 관리로 등용하려 애를 썼지만 자신의 길은 구법이요, 역경(譯經)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며 간곡하게 사양하는 현장스님의 모습에서는 감동이 지~~잉 하고 일었습니다.
게다가 저자는 현장법사의 말년에 일어난 몇 가지 불미스런 일도 서슴지 않고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현장스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경전을 짊어지고 온 중인도의 푸루우바야(福生)란 스님이 있었는데, 그를 호되게 견제하고 무시무시하게 억압해서, 그 스님은 결국 힘들게 가지고 온 경전들을 다 빼앗기고 전염병이 도는 오지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연이 그 중 하나입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혹시 불교 내 다른 종파나 유교나 도교 측의 모함이나 억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년에 자신의 역경사업에 집착하는 현장스님의 일그러진 단면조차도 이 책에서는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스승인 대학자 지셴린 선생은 현장스님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현장스님은 중국 불교사상 과거를 이어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대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온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경건하고 독실한 종교가의 한 사람인 동시에, 유능한 정치 활동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와 당나라 왕조 통치자들의 관계는, 상호 이용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다. 이런 관계로 말미암아 불교, 특히 대승불교가 일정한 발전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 탐구에 신명을 다 바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법사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 점만큼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첸원중의 <현장서유기>를 정신없이 읽어내려 갔던 때는, 하루에 책 한 권씩. 그렇게 거의 10년에 걸쳐 책을 소개해오던 라디오 방송을 마쳤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방송을 하고나서는 한동안은 책을 멀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 없는 곳에서 한동안 지내고 싶어졌습니다.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책에 지치고 물렸을 때 첸원중 교수의 <현장서유기>가 나를 다시 책장 앞으로 불러 세웠습니다. 아니, 천축으로 난 모래밭으로 나를 불러냈습니다.

그 뜨거운 모래밭을 두 발로 걸어갔던 이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자 가슴이 다시 쿵쿵 뛰었습니다.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책모임 벗들에게 <서유기>를 읽다 중간쯤에 첸원중 교수의 <현장서유기>를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소설과 현실 사이에서 진리를 찾아 목숨을 기꺼이 내던진 한 구도자의 삶을 제대로 짚어보려면 그리 해야 한다고요. 고맙게도 벗님들은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마 이 두꺼운 책을 읽고 나면 불교에 대한 이해와 구도자에 대한 애정이 한층 도타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손오공을 비롯해 저팔계와 사오정, 그리고 용마까지 거느리고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현장스님의 순례길이 그리 혹독했는지 새삼스레 깊은 전율이 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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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정불자들은 결코 굴하지 않습 2018-12-09 12:12:10

    해종세력으로 지목당해 조계종사찰 출입금지당한 불자입니다.
    그때는 7세기 당나라때라 속절없이 당했지만
    지금은 21세기 촛불민국입니다.
    그때와 달리 우리 청정불자들은 절대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범계적폐 권승들을 끌어낼 겁니다   삭제

    • 7세기 당나라판 해종탄압? 2018-12-09 12:09:14

      현장스님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경전을 짊어지고 온 중인도의 푸루우바야(福生)란 스님이 있었는데, 그를 호되게 견제하고 무시무시하게 억압해서, 그 스님은 결국 힘들게 가지고 온 경전들을 다 빼앗기고 전염병이 도는 오지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연 그중 하나입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혹시 불교내 다른 종파나 유교나 도교측의 모함이나 억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딱 지금 조계종 상황과 이렇게 똑같나요?
      범계권승들이 청정불자를 해종세력이라 모함하여 멸빈 제적 출입금지 탄압하는거와 똑같습니다   삭제

      • 설마 2018-12-09 12:04:56

        설마 지금 청정불자들에게 해종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범계권승도
        몇십년뒤 소설 드라마 영화 웹툰에서는
        현장당처럼 계행 청정하고 원리원칙 주의자고
        허구한날 정부 대기업 타종교에 맨날 얻어터지는 역할로 포장되려나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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