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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까가 울고있다[연재] 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20
  • 허정스님_ 전 천장사 주지
  • 승인 2019.04.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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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룸비니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을 시작으로 순례를 시작하고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꾸시나가라에서 순례를 마친다.

 순례자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에서는 아기의 태어남을 같이 기뻐하고 보드가야에서는 이 세상에 나타나기 어려운 삼막삼붓다의 탄생에 놀라워한다. 초전법륜경이 설해질 때는 오비구가 된 듯이 설법을 듣고, 술취한 코끼리를 길들이신 라자가하, 원숭이의 공양을 받는 받으신 웨살리, 칼을 들고 달려드는 앙굴리말라를 제도하신 사왓티, 부처님의 마지막길을 50km나 따라왔던 릿차위들에게 부처님이 발우를 건네줄 때는 순례자는 발우를 받아든 릿차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꾸시나가라에 당도하여 80세의 노구(老軀)를 살라나무사이에 가사를 펴고 열반에 드신 그분의 앞에서게 된다. 마치 이제까지 함께 순례를 해왔던 동반자를 잃은 듯 새삼 부처님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왓티에서 만난 스님들과 꾸시나가라에 당도하여 열반당을 찾았다. 이천육백년이 지난 지금도 부처님은 여전히 하루에 백벌 이상의 가사공양을 받으시고 계시다. 이미 많은 참배객들이 누워계신 부처님앞에 앉아 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때 베트남 노보살님의 옆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베트남불자들 사이에 있던 머리가 하얀 보살님은 옆사람조차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 보살님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다.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하는데 어제 읽은 책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생사의 넓은 바다를 이제 누가 노를 저어 건넬 것이며, 무명의 길고 긴 밤에 누가 등불이 되어 주겠는가?“ 부처님의 열반을 보고 천신이 읊은 이 게송이 곧 내 마음이 되더니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수많은 생 동안 난행고행의 보살행을 하시고 드디어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신 후, 일생동안 맨발로 사람을 찾아 다니시던 부처님, ‘단 한 순간 만이라도 그 분을 뵐 수 있었다면...’하는 생각과 함께.

아난다는 부처님이 꾸시나가라 같은 작은 마을에 열반하시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난다는 라자가하 웨살리 사왓티등 당신이 오래머무신 큰 도시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의를 드렸다. 부처님은 아난다의 요청을 물리치시고 마하수닷사나왕(D17)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꾸시나가라가 예전에 얼마나 멋진 도시였는지를 설명했다. 대체로 부처님이 작은 마을 꾸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이유를 3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붓다의 전생인 마하수닷사나왕(D17)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경은 전생담이면서도 자타까에 속하지않고 디가니까야에 속해있다.

둘째는 마지막제자가 될 수밧다를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시 120세인 수밧다는 부처님의 마지막제자가 되었고 이교도였던 자였기 때문에 4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했지만 출가한 그날 밤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부처님 열반상 밑에는 3분의 조각이 있는데 오른쪽에 울고 있는 분이 아난다, 왼쪽에 긴머리를 풀고 있는 분은 말리까부인, 가운데 뒷모습을 보이며 가부좌한 분이 마지막제자 아라한 수밧다이다. 조각가는 그가 수밧다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가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 가져온 삼지창을 옆에 그려놓았다.

셋째는 꾸시나가라에는 사리를 균등하게 분배할 지혜로운 도나바라문이 있어서라고한다. 도나바라문은 사리를 분배한 공덕으로 사리를 분배할 때 사용한 되를 탑을 세워 봉안했다.    근본 사리탑을 생각할 때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꼬살라국에서 사리분배를 요구하지 않은 점이다. 사까국을 침략하여 멸망시킨 위두다바는 돌아오는 길에 아찌라와띠 강변에 텐트를 치고 잠들었다가 홍수에 휩쓸려 죽었다. 그래서 위두다바의 아들이 새로운 왕이 되었는데 그는 사리를 가지러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자신의 아버지가 사까족의 멸망시켰기에 차마 사리를 요구하지 못했을까?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시고 나서 사리가 10곳으로 나누어져 탑이 세워졌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족, 까빨라왓투의 사까족, 알라깝빠의 불리족, 라마가마의 꼴리야족, 웨타디빠의 바라문들, 빠와의 말리족이 8등분하여 가져갔고 나머지 2개는 사리분배를 담당했던 도나 바라문이 사리함을 가져가서 탑을 세웠고 늦게 도착한 삡팔리 숲의 모리야족은 세존의 숯을 가져가 탑을 세웠다. 이렇게 8개로 사리가 분배된 것은 꾸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만일 라자가하에서 열반하셨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에게 이 일곱 나라가 감히 사리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겠는가? 군사적으로 힘이 약한 꾸시나가라의 말라들도 “세존께서는 우리 마을의 땅에서 반열반 하셨기에 세존의 사리들을 나누어 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다가 일촉즉발의 전쟁상황에 처하게 되었었다는 걸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부처님께서 꾸시나가라 같은 힘이 없는 곳에서 반열반하시어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등 군사력이 약한 나라들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실수 있게 된 것이다.  

 

열반상 밑에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우는 여인은 빠세나디왕의 왕비 말리까가 아니고 이 곳 말라족 출신인 반둘라사령관의 부인이다. 꼬살라 왕의 아들인 빠세나디왕자와 릿차위족의 마할리 왕자 그리고 말라족 왕자 반둘라는 딱까실라에서 동문수학한 도반들이다. 빠세나디왕이 꼬살라국의 왕이되자 반둘라왕자는 사왓티로가서 꼬살라국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무술실력이 뛰어났는데 특히 활쏘기를 잘했다고 한다. 반둘라의 아내 말리까는 부처님의 가피로 16번 쌍둥이를 낳아 총 32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반둘라 가족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둘라는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았고 이 소문을 믿은 빠세나디왕은 반둘라와 그의 아들들을 모두를 죽이게 된다. 빠세나디왕은 이 사건으로 왕의 자리를 찬탈 당하게되고 아자타삿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으나 성밖에서 죽는다.  말리까부인이 남편과 아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스님들을 초청해서 공양을 대접할 때였다. 남편과 아들들이 모두 죽었다는 편지를 받았지만 그녀는 편지를 읽고도 침착하게 스님들의 공양시중을 들었다. 이렇게 초인적인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말리까 부인이었지만 부처님의 열반앞에서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리까가 울고 있다.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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