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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와 목갈라나, 나의 최상의 제자가 될 것”[연재] 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21
  • 허정_전 천장사 주지
  • 승인 2019.04.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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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라자가하(왕사성)에서 5안거를 나셨고 쉬라바스티(사위성)에서 24안거를 나셨지만 순례객인 나로서는 왕사성이 둘러볼 곳이 더 많고 나눌 이야기가 더 많다.

왕사성은 부처님이 많은 제자를 교화한 곳 혹은 원숭이에게 꿀 공양을 받은 곳이라는 8대성지에 들어가 있는데 〈대승본생심지관경〉에는 라자가하가 반야경 법화경을 설한 곳이기 때문에 보탑을 세웠다고한다. 이처럼 왕사성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불자들에게 유서깊은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왕사성은 우리나라의 산을 닮아있어 포근하고 친근하다. 부처님 당시 크고 작은 나라들 16개국이 영토전쟁을 벌일 때 마가다국이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은 이곳이 다섯개의 산으로 둘러쌓인 천하의 요새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왕사성을 둘러쌓은 다섯 개 산등성이를 잇는 성벽이 남아있다.

이 성벽에는 32개의 큰 출입문과 64개의 작은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저녁이면 모든 문을 다고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찬탈당한 코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이 아자타삿투왕에게 도움을 청하려 성문앞에 까지 왔으나 굳게 닫힌 성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그 날밤 빠세나디는 추위에 떨다 죽고 말았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조건은 훗날 마가다국이 마우리야 왕조를 건립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죽림정사를 기증받고 왕사성에 머물 때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이자 기억해야 할 일은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다가 탁발을 하던 앗사지(마승)존자를 인연으로 출가한 일이다.

<팔대영탑명호경>에서 왕사성이 부처님이 많은 제자를 교화한 곳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마도 사리뿟따와 목건련과 더불어 250명이 출가한 사건을 의미할 것이다. 우루웰라에서 제도된 가섭 3형제와 그들의 무리 1000명과 사리뿟따와 목건련과 그들의 무리 250명이 출가하자 1250명이 특정되어 초기경전에 나타나고 금강경이나 예불문에도 1250대아라한으로 정형화 되었다.

출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아들과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들은 ‘부처님이 젊은이들을 전부 뺏앗아 갔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성도후 2년도 안되어 마가다국왕 빔비사라가 수다원과를 얻은 신자가 되었고 1250 아라한과 재가자 수다원 11만명과 1만명의 재가자가 출가자를 외호하는 상황이었기에 여인들의 그러한 불만은 사그라들었다.

왕사성은 빔비사라왕이 살았던 구왕사성과 아자타삿투가 새로 건설한 신왕사성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리뿟따와 앗사지의 만남은 구왕사성에서 일어났다. 현장스님은 ‘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시킨 곳에서 동북쪽으로 수투파가 있는데, 이 곳은 사리뿟다가 앗사지(馬勝)비구의 설법을 듣고 과위를 증득한 곳이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곳은 빔비사라감옥이나 지와까승원 가까운 곳일 것이다.

우빠띠싸(Upatissa)는 왕사성에서 탁발하고 있던 앗사지존자를 발견하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한다. 탁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고 무엇을 가르칩니까?” 앗사지존자는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 겸손을 보이면서도 간략하게 불법의 요점을 설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법신게(法身偈)이다.

“모든 법은 원인에 의해 생겨납니다.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합니다.
또한 그 법의 소멸함도 설합니다. 이것이 대사문의 가르침입니다.”_마하왁가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앗사지와 사리뿟따의 만남

사리불은 이 게송의 두 줄을 들었을 때 이미 수다원과를 얻었다. 게송을 다 듣고는 감격하여 말했다.

“만약 가르침이 이것뿐이라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리뿟다는 이 게송을 목갈라나에게도 들려주었고 목갈라나 또한 이 게송을 듣자마자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 사리뿟다는 이 게송을 들려준 스승 앗사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늘 스승을 생각하며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머리를 두고 잠을 잤다고 한다. 앗사지 존자가 설한 게송은 법신게(法身偈) 법신사리게(法身舍利偈) 연기법송(緣起法頌)이라고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환희심과 영감을 주었다. 후대에는 이 법신사리게를 돌이나 동판에 새겨서 부처님의 사리와 함께 수투파에 모시는 것이 유행하여 산치대탑, 목갈라나탑, 녹야원에서 초전법륜경을 설한 것을 기념하는 다메크탑등에서 이 게송이 쓰여진 흙으로 구운 도장, 동판, 석판등이 발견되었다. 때로는 불상이나 탱화등에도 이 법신게가 쓰여졌다.

브라흐만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사리뿟다에게는 6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모두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사리뿟다는 자신이 열반할 때가 되었을 때 부처님께 알려 허락을 얻고 고향으로 돌아가 열반에 들었다. 고향에는 홀로계신 삿된 견해를 가진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제도하고 그곳에서 열반하였다. 사리뿟다가 태어나고 열반한 장소에는 커다란 사리탑이 세워졌는데 그 탑을 중심으로 날란다대학이 건립되었다.(현장스님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현장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기리악(Giriyak hill)이 열반장소가 될 것이다. 매년 음력 시월보름 사리뿟다존자의 열반일에는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걷기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부처님은 사리뿟다와 목갈라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두 제자를 특별히 아꼈다.

“셀라여, 내가 굴린 위없는 담마의 바퀴를 여래의 뒤를 이어 사리뿟따가 굴릴 것입니다.” (Stn3.7)

“비구들이여,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따라 배우라. 비구들이여,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섬겨라. 이 두 비구는 현자요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수행자들을 도와주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낳아준 친어머니와 같고 목갈라니는 태어난 자를 길러주는 유모와 같다." (M141)

‘누가 당신의 계승자인가’라는 셀라의 질문에 ‘사리뿟따가 계승자’라고 대답하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친모와 양모라고 비유한 것을 보면 부처님이 사리뿟따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사리뿟다존자는 부처님보다 6개월 일찍 열반에 들었고 목갈라나존자는 사리뿟따보다 2주 늦게 열반에 들었다. 목갈라나존자의 열반은 극적이다. 신통제일인 목갈라나였기에 사람들이 죽으면 어떤 세계에 태어났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친척이 어디에 태어났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교도들이었던 이들이 죽어서 나쁜 곳에 태어났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이교도 수행자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사실에 위협을 느낀 이교도들은 산적에게 돈을 주어서 목갈라나를 죽이도록 시켰다.

 산적들이 6번째까지 목갈라나를 죽이려 했으나 목갈라나의 신통력으로 번번히 실패했는데 일곱 번째 목갈라나는 이렇게 죽는 것이 자신이 지은 악업의 과보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맞아죽었다. 목갈라나는 죽기전에 부수러진 몸을 추스려서 부처님께 가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리고 다시 거주하던 곳으로 돌아가 죽었고 부처님은 목갈라나의 사리를 죽림정사에 안치했다.

사리뿟다와 목갈라나는 가까운 동네에 살았다고하니 목갈라나가 살았던 마을도 날란다유적의 사리뿟다 탑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몇 년전에도 목건련의 사리탑을 찾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가서 겨우 사리탑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목갈라나 수투파.바로 뒤에 힌두사원이 있다.

현장스님은 “날란다사의 서남쪽으로 8∼9리를 가다 보면 꼴리따(Kolita)에 이른다. 그 속에는 탑이 있는데 아소카왕이 세운 것이다. 이곳은 존자 목갈라나가 태어난 마을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목갈라나 사리탑이 위치한 곳은 사리뿟따 사리탑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주파디(Juafardhi)라는 곳이다. 목갈라나 탑은 동산처럼 생겼는데 염소들과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객이 찾아와서 그런지 우리주위에 2십여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마을 청년들은 친절하게도 수투파에서 나온 불상이라며 근처의 초등학교에 모셔진 불상을 보여주었다.

사리뿟다와 목갈라나가 앗사지의 게송을 듣자마자 수다원과를 증득하는 것을 보고 ‘어찌 이 선배들의 증득은 이리 빠를까?’라는 부러운 생각이 들면서도 “저기오고 있는 꼴리따와 우빠띠사, 그들이 나의 최상의 한 쌍의 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그들을 처음 보는 자리에서 예언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 그들이 수많은 생동안 지내온 인연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단박에 수다원과를 얻은 게송,
 “모든 법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라는 법신게를 음미하면서 생각한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 불자들에게 이 보다 더 강력한 만뜨라, 이 보다 더 희망을 주는 가르침은 있을 수 없겠다”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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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 2019-04-23 20:42:24

    스님, 다시 글을 대하는 기쁨 무엇에 비할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 유키카제 2019-04-20 14:54:08

      사리뿟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칭하는 게 아닌 듯 싶은데 헷갈리네요... 로마자 표기법에 의해서 팔리어도, 산스크리스트 어도 같이 쓰는 방식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는 빨리어, 누구는 팔리어... 이렇게 가면 국립국어원에서 쓰는 방식에서 멀어져 더 헷갈릴 수도 있는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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