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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유심작품상 이재무ㆍ김영재ㆍ이경철ㆍ이상범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재무 시인, 김영재 시조시인, 이경철 평론가, 이상범 시조시인 (사진제공 :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만해스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학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제17회 유심작품상 수상자에 이재무 시인, 김영재 시조시인, 이경철 평론가, 이상범 원로시조시인이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3일 제17회 유심작품상 시부문에 이재무 시인의 ‘목련’, 시조부문에 김영재 시조시인의 ‘바늘귀’, 평론부문에 이경철 평론가의 평론집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특별상 부문에 이상범 원로시조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만해축전 기간인 오는 8월 11일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2019 유심작품상 심사평


시부문 수상작; 이재무 <목련> 

  소리란 무엇인가. 인간의 경우는 음성, 한마디로 언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성을 통해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거나 전달한다. 그런데 소리는 인간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인간의 세상을 뛰쳐나와 밖을 보아라. 이 이 우주의 모든 사물들도 크던 작던 소리들을 낸다. 바람소리, 물소리, 파도소리, 천둥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전화벨 소리…… 이 모든  소리 역시 그들의 언어이며 그들만의 의사소통이 아닌가.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가청(可聽) 주파수라 하는데 다른 짐승과 달리 인간은 20-20.000Hz(헤르츠) 영역 안의 소리만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인간은 이 세상의 대부분 사물들과 소통을 단절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듣지 못하는 그 사물들의 소리는 누가 들을 수 있는가? 누가 그 사물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그 가능한 자를 일컬어 편의 상 그저 시인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훌륭한 시인은 이 물리학적 세계의 소리, 경험적 세계의 이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 일상의 인간이 듣지 못하는 그 어떤 사물의 언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재무, 그는 사물이 들려주는 언어를 잘 들을 줄 아는 시인이다. 시류적 시인과 달리 그 사물의 말에 귀를 기우리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다. 4월의 어떤 화창하지만 적막한 봄날 모든 사람들이 삶의 횐희를 노래할 때 오히려 그는 목련이 들려주는 호곡 소리를 조용히 엿듣고 있지 않는가. 아름다움은 오로지 기쁨의 소유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이처럼 슬픔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슬픔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우리 문단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의 소리에만 집착하는 요즘 모처럼 사물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시를 위해서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심사위원; 오세영)  

시조부문 수상작; 김영재 <바늘귀>

 만약에, ‘오늘의 현대시조가 그 시적(詩的) 성과를 어느 정도나 거두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재 시인이 최근에 상재한 두 권의 시집 <녹피경전(鹿皮經典)>과 <목련꽃 벙그는 밤>을 읽어보시라. 그러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라고.
 그렇다. 시조의 정격이라고 하는 단수는 물론이고 연시조와 사설시조까지 시집에 수록된 여러 편 작품들에서 시인의 진면목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나름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는 활달한 시조의 틀과 격(格) 그리고 우리말의 아름다운 짜임으로 엮어낸 그 시적 묘미(妙味)는 물론이고 의외의 결구(結句)로 튼실한 매듭을 짓는 특유의 보법을 새삼 감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권위를 자랑하는 유심작품상 시조부문 수상작으로 결정한 <바늘귀>도 앞에 적은 지적들을 충족할 만한 작품 가운데 한 편임에 틀림이 없다. 
 송곳과 바늘은 둘 다 그 끝이 뾰족하지만  ‘귀’가 있고 없음으로 해서 명칭이 갈리게 된다. 그래서 뾰족한 송곳을 바늘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귀가 없기 때문이다. 그 귀가 있는 ‘바늘은 찌르기도 하지만 아픈 곳 꿰매준다’는 데에 화자의 생각이 모아진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의 상처 꿰맨 일 있었던가’라고 자문하기에 이른다. ‘찌르고 헤집으며 상처 덧나게’ 한 이제까지의 못난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마침내  ‘손끝에 바늘귀 달아 아픈 너 꿰매고 싶다’는 늦은 깨우침 끝에 간곡한 바람을 담게 된다. 두 수 연작 모두 초장의 열고 중장의 펼치며 종장에 닫는 기본 보법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시인 특유의 작법 태도인 상의 비약까지 잘 갈무리하고 있었다.
 시인 자신의 자기성찰과 반성을 주제로 다룬 특별한 작품 <바늘귀>로 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박시교)

평론부문 수상작; 이경철 평론집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심사위원들은 논의 끝에 이경철의 비평집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를 2019년도 유심문학상 비평부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불교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이경철의 비평집은 나름대로 이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 비평집은 20세기 초반부터 21세기 밀레니엄 격변기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성과를 거둔 불교시 명편들을 다루고 있다. 
제1부는 현대시의 초창기로 최남선으로부터 한용운까지  제2부는 김달진, 서정주로부터 이원섭에 이르기까지 제3부는 김수영, 김춘수로부터 황동규에 이르기까지 제4부는 정현종, 오세영으로부터  김지하에 이르기까지 제5부는 이성선, 나태주로부터 이청화에 이르기까지 제6부는 황지우, 이성복으로부터 장석남에 이르기까지 제7부는 이홍섭, 문태준으로부터 임효림 등에 이르기까지 다루었다. 그리고 제8부에서는 총론으로 전체를 조감하는 글로 마무리되고 있다. 전체를 일별해 보면 알겠지만 우선 이 비평집은 지난 110년의 한국현대시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시적인 체계를 세우려고 이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또한 이미 문단에 널리 알려진 바대로 현장 비평가로서 이경철의 역량을 잘 발휘하여 한편 한편의 시를 구체적이고도 섬세한 미감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비평집 한 권으로 현대불교시사를 대표하는 명편들을 집약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지난 한 세기 넘게 축적되어 온 불교시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제8부 총론이 소략하여 전체를 하나로 꿰는 통시적 시각에서의 서술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입체적인 시각을 부여하면 더욱 빛나는 저술이 될 것이라 여겨지지만 이는 다음 후속되는 작을 통해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경철 선생의 이번 유심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를 발판으로 앞으로 더욱 견고한 비평적 업적을 구축하여 한국현대불교문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비평기로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최동호)

특별상 수상자; 이상범(원로 시조시인)

새로운 100년, 나라 빼앗긴 2천만 겨레, 마침내 한 몸 되어 일어나서 하늘 흔들며 부른 독립만세의 날, 그 3・1혁명의 한 세기를 기념하는 오늘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이 나라 역사에 활화산을 터뜨릴 독립투쟁의 선봉이었다. 그보다 다섯 달 전인 1918년 순수민족교양지 「유심」을 창간하였으니 저 드높은 정신의 물길을 어찌 잇지 않으리오. 설악당 무산 큰 스님이 설악에 주석하시어 문학월간지로 「유심」을 복간하는 한편 “유심작품상”을 제정하니 올해로 17회를 맞는 뜻이 더욱 깊다. 
이를 기려 시, 시조, 평론 3개 부분의 수상자를 가리고 더하여 특별상 수상자로 시력 56년을 맞는 원로 이상범 시인을 맞는 기쁨을 심사위원이 다 같이 만나게 되었다. 
이상범 시인은 오직 시조창작에만 전념해 왔을 뿐만 아니라 84세의 고령임에도 시조시단의 어느 누구보다도 우수한 작품의 생산력이 앞서면서도 현대시조의 정수와 미학을 날로 새롭게 탁마하여 후학들에게 사표가 되고 있다. 거의 해마다 사화집을 상재해 낼 만큼 다작이면서도 감성의 날카로움이 사람의 얼을 베이는 듯 말씀의 매듭과 가락 또한 맺고 끊고 휘어지고 넘침이 마치 봉황이 나는 듯 하고 황룡이 우는 듯하다.
지난해 상재한 사화집 <푸득 이면 날개가 되는> (2018, 11,20 해드림 출판사)만 해도 어머니를 글감으로 쓴 작품들은 아무리 우려내도 끝이 다 하지 않는 가슴을 에는 모정의 짙은 울림을 대가의 솜씨로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는 북두칠성 가까이에 깜빡이고/  아흔 셋 떠나가신 새댁 모습 궁금해져/ 찍어둔 밑그림 없어 마우스로 그렸다”
 2 수 연작의 첫 수에서 이 몇 해 디카로 꽃 찾기를 다니면서 사진과 시를 짝으로 펴내는 이상범 시인이 붉은 양귀비꽃에 “어머니의 얼굴”을 마우스로 그려 넣고 올린 “모상(母像)”이다. 아흔셋에 여읜 어머니의 새댁일 때의 모습을 그림이거나 글로 새긴 이가 있었던가.
 “선한 눈 가득한 사랑 보살이던 어머니”에서 명산대찰 부처님께 아픈 사랑 두 손 비시던 어머니는 이제 새댁이 되어 눈앞에 계시다. 지난 해 이맘 때 열반하신 무산 큰 스님도 이 시를 읽으시면서 새신랑처럼 반기시리라.(심사위원; 이근배)
 

2019 유심작품상 수상소감

이재무 시인(시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오늘도 나는 불암산을 오르내린다 
수상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원인 모를 부끄럼이 나를 엄습해왔습니다. 서른다섯 해 동안 시를 써오면서 과연 나는, 그동안 시에서 진술한 내용에 걸맞게, 삿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내게 주어지는 이 상이, 다른 상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운동을 통해 청년운동을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여 불교의 현실참여에 앞장서온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상이고 보니 수상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 기쁨의 자리를 밀어내고 이내 무거운 책임감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흔히 아날로그 세대로 명명되는 내 몸 속에는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의 정서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등잔불 밑에 엎드려 숙제를 했고 비포장도로를 걸어 학교를 오갔습니다. 좀 자라서는 기차를 타고 대처에 나가 온갖 근대문명의 이기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문명 기기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발 빠른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학적 용어로 우리 같은 세대를 경계인이라 합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두루 여러 세대에 걸쳐져 있는 정신상태로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 그리하여 까닭 모를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세대가, 이른바 세상의 저널에서 흔히 말하는 베이비 붐 세대인 것입니다. 
나의 시력은 바로 이러한 요철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된 삶의 이력을 반영해 온 것에 다름 아닙니다. 즉, 나의 시는 살아오면서 나에게 의식, 무의식으로 영향을 끼쳐온 세계의 온갖 사물과 나를 다녀간 무수한 인연들을 표절해온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표절 시인이었습니다. 고향을 표절하고 엄니의 슬픔을 표절하고 아부지의 한숨과 동생의 좌절을 표절하고, 눈과 비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과 달을 표절하고 한 사내의 탕진과 애인의 눈물과 아내의 한숨을 표절하고, 기차와 여관과 굴뚝과 철길과 중서부 지방의 사투리와 그해 겨울 저녁의 7 번 국도와 한여름 강진의 해안선과 서울에서의 피난민들의 삶을 표절했습니다. 
요사이 나는 부처의 향기가 난다는 佛巖山을 하루에 한두 번 일과처럼 오르내리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중얼중얼 산에게 속말을 건네고 아무도 모르는 죄를 토설하고 때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산과 심심상인, 교외별전이 이루어지고 나는 산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산에는 크고 작은 돌들과 우람한 바위들이 많은데 오르고 내릴 때 삼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 산에 어린아이로 들어왔으니 어른이 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산을 내려가 세상 어디를 주유하든 나는 이미 내 몸 안쪽에 자리한 불암산을 오르내리며 산이 주는 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유심 문학상’이 내게 준 선물에 내 식으로 보답하는 일이며 ‘만해 한용운 선생’을 사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수상의 기쁨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심심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김영재 시인(시조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시조를 읽고 쓰는 일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고 글을 쓰는 보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시조, 빛나는 한 편의 시조를 위하여 오랜 시간 시조 쓰기에 혼신을 다했다.
길을 걷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며, 숨 막히는 폭염을 헤치며 사막을 건너면서도 나는 시조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45년을 시조에 정진했고 앞으로도 더욱 심하게 나를 다지며 시조 쓰기에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19년 봄 여덟 번째 시조집 『목련꽃 벙그는 밤』을 펴냈다. 여기에 수록된 「바늘귀」로 유심작품상 시조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다.
더없이 기쁘고 영광스럽다.
독립운동가이자 불교 사상가이며 「님의 침묵」을 쓴 탁월한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제정한 유심작품상이다.
내가 가는 시조문학의 길, 그 길 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며 더욱 열심히 시조 창작에 전념할 것을 다짐해본다.
그런데 기쁜 것만 아니다. 마음 한 구석에 슬픔이 고인다. 아니 먹먹하다. “영재야, 늙은이 자꾸 놀라게 하지 마라”고 나의 시조를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던 그분, 오현 큰스님이 내 곁에 안 계신다. 그분께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할 수 없다. 슬프다. 이 상을 오현 큰스님 앞에 두 손 받들어 올린다. 
오현 큰스님!
빛나는 시조를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스님은 가셨지만 가신 것이 아니기에 제가 쓴 시조 한 편 읽어봐 주세요.

그림자가 있어서 부끄러움 배웠습니다

그림자도 부끄럽지 않게 살라 하신 그 말씀

대청봉 귀때기청봉 붙들고 새기겠습니다 (졸시-‘그림자도 부끄럽지 않게’)

이경철 평론가(평론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백담사는 우리문학의 성지입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갑니다/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며 만해 한용운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집 『님의 침묵』 을 탈고한 곳입니다. 만해를 이어받아 설악(雪嶽) 무산(霧山) 오현 대종사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시세계로 널리 보시하고 구제하다 원적(圓寂)하신 곳이 백담사입니다. 이런 뜻깊은 곳에서 두 분의 원력이 오롯이 담긴 이 상을 받게 돼 떨립니다.      
  널리 알려진 시 두 편 읽어보겠습니다. “삶과 죽음 갈림길/여기 있음에 두려워하여/나는 간다는 말도/못 다 이르고 가는가/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가는 곳을 모르겠구나/아! 극락세계에서 만나 볼 나는/도(道) 닦아서 기다리겠다” 잘 알려진,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미당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입니다.
  신라 향가와 현대시로 두 시 사이에는 1천2백여 년의 거리가 있습니다. 한사람은 승려고 한 사람은 시인이지만 두 시 모두 시, 공간과 이, 저승을 초월하는 영원성, 원만한 불교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시에는 이렇게 민족문화의 원형으로서 불교가 들어있어 시를 더욱 그윽하고 깊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시사 1백10년 주요 시인들의 시를 통해 그런 불교와 시의 끈끈한 관계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려한 작업이 이번 수상집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입니다. 연구를 하며 모든 것을 수용, 포용하는 불교 특유의 원만함과 단숨에 본질에 가 닿으려는 일초직입(一超直入)의 선(禪)적 자세가 시의 궁극과 같음을 실감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가라사대’로, 유교에서는 ‘공자 왈(曰), 맹자 왈’로 교주 혹은 성현의 말씀을 절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듣는 내가 주체가 되고 있습니다. 불교의 이런 원만하고 한량없는 인본주의 세계가 시세계의 궁극과 같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다 탈고하고 시와 불교에 대해 뭘 알았나 자문했을 때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캄캄하게 깨달았습니다. 부처님 말씀 8만4천경은 가르침, 확답,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들었다며 스스로 깨쳐가야 하는 화두(話頭) 아니겠습니까. 시 또한 그런 화두, 영원한 설레임의 환한 고통, 혹은 그리움 아닐까하고만 여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월명사의 ‘도 닦아 기다리겠다’는 불심(佛心)과 미당의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시심(詩心)에 무슨 차별과 등급이 있겠습니까. 
  그런 삶과 도와 그리움의 궁극을 향한 길, 그 까마득히 아득한 길을 축여주는 감로수 같은 이 상 달게 받습니다. 만해와 오현, 백담사에 엎드려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상범 선생(특별상 수상자) 수상소감

환자 둘과 세 식구, 30년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매사가 낯설고 세상도 낯설었습니다. 징역 살 듯 살아온 생애,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그 나름의 별이었으면 싶습니다. 새록새록 꿈꾸며 알알이 박히는 별의 말, 끝내는 하늘에 박히는 별의 말로 태어났으면 싶었습니다. 어지간히 살아온 생애, 아픔과 뉘우침이 나이테를 두릅니다. 시조 하나만을 붙들고 영위한 시의 터전, 그 사려의 떡시루에 자위가 돌아 영혼을 밝히고 있습니다. 먼 데 별이 반짝입니다. 
평론가들의 안목을 모아 보면 현대시조가 경작할 연원지이고, 형식미의 승리라고도 했습니다. 딴은 ‘진초록의 힘줄과 믿음’에 희망을 주는 시라고도 했고, 시조의 강물에 띄운 영혼의 빈 배라며 선, 착할 선善에 쉽게 다가서도록 대중과 부처에게 빛을 받는 시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디카시, 경계 너머의 시에서 한 알 이슬이 우주의 역사를, 꽃잎 하나가 새의 깃으로 재탄생 하는 주술사의 힘을 보이고 삶과 역사 속 인물, 민족의 진로를 제시하며 혼의 하늘 깃을 칠 세 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2007년도 『꽃에게 바치다』의 칼라 디카시집을 출간 했습니다. 재정능력이 버거운 나에겐 부담이 컸지만, 계속해 도움을 주는 분과 출판사가 있어 연달아 일곱 권의 칼라판 디카시집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사진과 시의 배합이 곧 디카시지만 풍경의 경우, 선정되면 그대로 사용하고 풍경을 제외한 모든 사진을 포토샵을 통해 남을 것만 남기는 영상을 디자인해 원하는 영상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꽃이 ‘애완견’으로, 새순이 ‘연인의 손’으로, 어린 연잎이 ‘거룻배’로, 솔잎 이슬이 ‘골프 채’로, 애기황새풀이 ‘성화 봉송’으로 아름답게 둔갑했습니다. 여기에 핸드폰으로 영상을 만들어 디카시의 영상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는 곧 디지털시대에 시와 독자를 연결하여 독자로 하여금 쉽게 지루하지 않게 시를 일깨운다는 자부심도 얼마간 가지고 있습니다. 시집을 내준 출판사에서 트위터에 단시조 ‘이상범의 디카시’를 20편 올리고 20일 지난 시점에 확인해 보니 4.700명이 퍼갔다고 전해 왔습니다. 지금도 틈나는 대로 올린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2008년, 경향신문사의 요청으로 ‘이상범의 디카시’를 주1회, 신문사 사설이 실린 오피니언 난에 1년간 50여 편을 칼라로 발표해 독자와 시의 소통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20년간, 문단 데뷔 10년 내외의 중견시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한국시조 작품상’을 제정, ‘한국시조’라는 시조전문지를 간행하며 지금은 지도자가 된 스물 한 분의 중견시인에게 수상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수상시전집을 기간 중 2006년과 2017년, 두 권의 수상작품집에 대표작을 넣어 수상시인의 대표작을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본인에게 특별상을 합의한 심사위원과 유신문학의 관계자에게도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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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산무소 2019-06-16 16:00:14

    본인 스스로 막힘 없는 생활이라면 굳이 어디가서 막힘 없는 지혜를 찾겠는가?

    환속해 대중을 위해 뭘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경제보다 환경에 창의 창조 창작하시면 본인도 대중도 삶의 질이 항상되지 않을까 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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