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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정한 당사자로 나설 때다

역사적 사건,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2019년 6월 30일 15시 46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쪽 지역으로 되돌아온 후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다. 세계 언론은 판문점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판문점은 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양측이 환담에서 밝혔듯이 이번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담은 불과 하루 만에 성사된 갑작스런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의 후유증과는 별개로 북·미간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는 익어가고 있었다. 4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찾았다. 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함께 체제안전 보장을 원하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했던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연대를 시작한 것이다. 

6월 20일 시진핑 주석은 집권 후 처음으로 평양을 국빈 방문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중국은 러시아에 이어 북한을 방문하며 중국의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G20 정상회의에서 마주 앉은 미·중의 정상은 극한으로 치닫던 무역전쟁에서 숨고르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미·중의 충돌을 우려했던 세계 각국은 일단 안도했다.

다른 한편으로 북·미 정상간의 친서외교가 전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의 시작을 선언한 시점에 즈음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아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접수를 확인하며,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답장의 친서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냈고, 북한 역시 ‘흥미로운’ 내용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묘한 시점에 양 정상들의 친서 외교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G20 회의에 참석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는 김에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DMZ 방문을 언급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SNS를 통해 전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리고 판문점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진 것이다.

주목해야 할 세 가지 요소

긴박하고 정신없이 전개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변곡점을 마련했다. 첫째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의 불씨를 확실하게 살렸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2~3주 내 실무협상을 재개하겠다는 것과 김정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대했음을 밝혔다. 앞으로의 진행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털어내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북한은 한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오지랖’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한국을 궁지로 몰았다. 북·러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은 한국의 중재 역할에 대한 회의론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비록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 양 정상들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대화의 불씨를 살리려는 한국의 노력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둘째,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탑다운’ 방식이 가장 효과적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실무차원에서 볼 때 미국과 북한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체제안전보장을 원하는 북한은 자신들의 유일한 카드인 비핵화를 일시에 다 내놓을 수 없다. 순차적인 행동을 통해 신뢰를 쌓아 나가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반면 급할 것이 없는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모습을 먼저 확정 짓고 최종적인 비핵화를 위해 단계별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 즉 경제제재 완화를 얻게 되면 특정 시점에서 비핵화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행선을 서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적 결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에 도움이 된다면 크게 손해보지 않는 차원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던 날 미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단히 불리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즈음해서 보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시기에 미국내에서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G20 참가와 한국 방문은 미국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이를 일시에 뒤집은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의 화답은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까지도 정규 방송을 제치고 생중계를 실시했다. 이렇듯 ‘탑다운’ 방식은 실무적으로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타결점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마술과 같은 힘을 가진 것이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의 판이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잠시 착각했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했다. 비핵화와 맞바꿀 대상은 경제제재 완화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제 완화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핵화의 다른 반대급부는 체제 안전보장이다. 미국과의 수교, 또는 연락사무소 개설 등과 같은 북·미간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외연을 확대한 것이다. 이는 북·러,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이번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보다 큰 틀에서의 논의가 진행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북한과 미국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판문점 남쪽 구역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배석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러한 판세의 변화를 반증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해진 한국의 당사자 역할

북한은 중재자, 촉진자를 자처했던 한국에 대해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 공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흔들림 없이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에 충실했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이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역할은 중재자와 촉진자의 역할을 넘어서 당사자로서 분명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북·미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큰 틀에서 방향성을 재확인 했을 것이며, 실무진들은 조만간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간에도 진행해야 할 일이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평양 선언’에 이르기까지 합의된 내용을 치밀하게 실행에 옮겨 나가야 한다. 북·미간 실무협상에서 나타나는 갭을 한국이 메워 나가겠다는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미국의 허락을 받는 모양새보다는 스스로 재개의 명분과 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관광사업과 인도적 지원은 국제제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관광을 하기 위해 접근하는 수단과 방법은 국제제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인도적 지원 역시 지원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현실적으로 지원을 위한 선박을 확보하는 일이나, 지원물자 구입을 위한 현금 송금 등은 제재의 범주에 있다. 이를 풀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남북간의 교류는 민족 내부간 거래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볼 때 국제제재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확고한 입장과 명분으로 국제사회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고, 국제기구나 NGO들의 대북지원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의 지원 역시 현실적으로 국제제재에 속하는 내용들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나 NGO들은 지속적으로 최종 목표가 인도적 지원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엔을 설득하고 있다. 이 설득을 통해서 지원이 성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은 대북지원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제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도록 끈질기게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북지원을 결정하고도 직접 판문점을 거쳐 지원하지 못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모습은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원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명백히 해야 한다. 미국이나 북한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재자 역할은 충분히 했다. 중재자는 양쪽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이익을 챙겨야 한다.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을 과감히 하는 한편, 국제제재와는 별도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던 근본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북·미 대화의 끈을 연결하기 위한 남북교류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교류를 위해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을 과감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당사자의 모습이다.[끝]

정토회 부설 평화연구원 평화진단 제 214 호  2019년 7월 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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