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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와 우리의 역할
사진은 지난 2018년 9월 18일~20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 천지 앞에 선 모습. 사진=청와대.

9월 하순으로 개최 예정된 북·미 실무협상

  한반도 비핵화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9월 9일 밤 11시 30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월 하순쯤 북·미 실무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것이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에서 양측은 2~3주 안에 실무회담을 갖기로 했지만,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을 비난하며 보이콧하는 바람에 한동안 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8월 9일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 군사연습이 끝난 뒤에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고, 일주일쯤 뒤 또 다시 친서를 보내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초청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제안에 미국이 응답하지 않자 8월 20일 한·미 군사연습이 종료됐음에도 북한은 북·미 실무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북·미 실무협상이 계속 표류하는 가운데,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하나는 지난 9월 6일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미시건대학 공개연설이고, 다른 하나는 9월 7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아프간 평화협상을 중단시킨 일이다. 두 가지 일의 발생은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실무협상장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미시건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관해 언급하면서 국제규범과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만약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하노이 공동성명의 원칙과 합의를 준수할 것이며, △대북 인프라 투자와 북한의 수출시장 확대로 경제발전을 제공하며, △안보적으로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전략적 검토도 가능하며, △톱다운 방식의 대화를 지속할 뜻이 있음을 밝히는 등 유화책도 제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 반군 지도자와 아프간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에서 만나 연속 개별회담하기로 한 약속을 하루 전에 취소하고 탈레반과의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작년 7월부터 탈레반 반군 측과 물밑접촉에 나서 마침내 금년 8월 초 탈레반 반군 측과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한 뒤, 9.11테러 18주년을 맞이하는 날에 맞춰 아프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계획했다.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탈레반에게 아프간 정부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미국 내 반발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화협상을 중단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 탈퇴, 쿠바 국교정상화 중단,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참가 거부, 이란핵합의 파기 등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업적을 부정하는 대신 북한 비핵화협상과 아프간 평화협상을 통해 자신의 외교업적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하고, 외교업적의 하나로 추진 중이던 아프간 평화협상을 전격적으로 중단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타산이 맞지 않을 경우 북한과의 비핵화협상도 깰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때문인지 북한은 비록 체면과 명분용으로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자신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북·미 실무회담에 응한다고 나선 것이다. 

 북·미 협상의 장애물은 김정은 불신과 ‘트럼프 리스크’

 북한의 요구에 대해 미국은 일단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선희의 담화가 나온 다음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 작년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볼턴은 그동안 줄곧 ‘리비아 해법’을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볼턴 경질의 이유로 들었다. 아프간 평화협상이 중단된 마당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한반도 비핵화 카드는 외교업적으로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초강경파인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입장차이가 여전히 커서 협상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북한은 여전히 단계적 접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외무성 미국국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해 이번 실무협상에서 대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북‧미 대화가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볼턴의 경질로 미국이 실무협상에서는 ‘유연한 접근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에도 대통령 선거 때문에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패는 기본적으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트럼프 리스크다. 첫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지의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새로운 민주당 정부와 비핵화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이 섣불리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빅딜’에 합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두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합의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경력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 뒤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작년 3월 26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때 단계적, 동시행동적 접근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두 가지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한 때문이다. 단계적 접근법이란 미래핵(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시험 중지 및 핵실험장·미사일 엔진시험장·발사대 폐쇄), 현재핵(영변 및 기타 핵시설)은 트럼프 제1기 행정부와 합의하고 어느 정도 이행할 수 있지만 과거핵(핵무기, 탄도미사일)은 2021년 1월에 들어설 미국 행정부와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은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셈법’

 지금 북한은 미국에게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고 있다. 3월 1일 리용호 외무상은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안전을 담보하는 문제’이지만, 현재 신뢰수준에서 불가피한 첫 단계 공정으로 ‘부분적 제재해제’를 하노이 회담에서 언급했다고 밝혔다.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단계와 경로’를 말하면서도 “제재해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9월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는 김정은의 시정연설 내용을 재확인했고, 9월 16일 외무성 미국국장 담화는 ‘제도발전 위협과 발전 장애물’의 제거를 주장했다.

 북한의 셈법을 요약하면, 단계적 접근과 안전보장이 기본이고 여기에 제재완화를 추가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조치도 제재완화보다 경성안보(한미군사연습 및 전략무기반입 중지)와 연성안보(종전선언·평화협정, 불가침조약, 연락사무소·대사관 개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존중하고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며,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지원과 환경 조성을 해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은 정작 기존 셈법을 고수하면서 미국에게만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 실무회담이 열리더라도 쉽게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만한 타결을 위해서는 북한도 기존의 태도를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셈법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단계론과 트럼프 리스크를 극복하고 북·미 실무회담이 성공을 거둬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노이 회담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2월 말 하노이 회담에서 미타결된 쟁점은 크게 ‘비핵화의 공동정의’와 ‘추가조치’에 관한 것이다.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중장거리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포기를 주장한다. 반면 대북 강경론자들은 여기에 더해 생화학무기,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핵시설 이외의 추가조치에 대해, 북한은 과거핵을 차기 미 행정부와 협상하겠다고 고집한다. 반면 미국은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의 경우 당장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해외이전을 주장하는가 하면, 협상파라고 해도 어느 시점에서 포괄적 신고를 할 것인지는 분명하게 약속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북‧미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실무회담을 넘어 연내 3차 정상회담이 열려도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타결짓기는 쉽지 않다. 연내 타결을 위해선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셈법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지어 불확실성을 없애야 하지만, 북한도 최소한 어느 시점에 과거핵의 포괄적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 북·미 모두를 설득해야 성공할 수 있어 

 북·미 실무협상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중재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9월 22일부터 닷새간 미국을 방문해 23일에 트럼프 대통령과 취임 후 9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24일에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기로 하였다. 당초 이낙연 총리의 유엔총회 참석이 예정되었지만,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열리기로 함에 따라 한·미 사전협의를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고위급회담이 위기를 맞자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회복의 돌파구를 열었다. 하노이 회담의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크게 약화됐을 때도 새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회의를 앞두고 4월 11일 워싱턴을 방문해 톱다운 방식의 유용성과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받았고,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정상회동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이번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정상회담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게 목적이었던 이전의 정상회담과는 성격이 다르다.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미 실무회담을 앞둔 지금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가장 중대한 고비”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떻게든 북·미 실무회담을 성공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요구한 ‘새로운 셈법’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안을 갖고 미국에 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이번 북·미 실무회담이 성공하려면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제대로 중재역할을 맡아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일괄타결이 아닌 단계적 타결을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안전보장 방안을 내놓도록 설득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관광재개나 남북 철도연결사업과 같이 한국의 역할이 포함된 ‘유연한 접근’도 논의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방미 전에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북한은 자신들은 기존 셈법을 고수하면서 미국에게만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만한 타결을 위해 북한도 기존 태도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과 같은 과거핵이다. 트럼프 1기 때 ‘어느 시점에서 포괄적 신고를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구체적인 이행은 차기 미 행정부에서 맡도록 하는 방안에 더 이상 거부로 일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대북 특사를 파견하거나 번개회동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북·미 협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큰 진전을 가져오는 변곡점이 되도록 해야 하며, 그것은 결국 북·미 양측의 셈법을 바꾸어내는 우리의 진지한 노력에 달려 있다.[끝]

정토회 부설 평화연구원 평화진단 제 218 호 2019년 9월 1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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