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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우월주의가 빚는 패륜
  • 박호석, 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19.12.16 08:23
  • 댓글 14

자연과학을 전공한 필자가 불교를 좋아하고 신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르침이 상식적이고 실천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 합리적인 타당성, 그리고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 추증성이 담보되는 과학의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불교는 파격(破格)을 앞세우는 선문(禪門)이라서인지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가 한국불교가 세계만방에 자랑할 만한 독창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장자종단이 왜 이름은 중국 이름인 조계종(曹溪宗)을 쓰는지, 그리고 한국불교를 세운 원효, 자장, 의상과 같은 스님들이 산문(山門)을 연 창건주 대접이 고작이냐는 의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효대사의 진영이 일본의 것을 모사해야만 했던 것이나 자장과 의상대사가 중국의 <불사도설(佛事圖說)>에 수록될 만큼 중국에서 추앙받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이 분들이 우리불교의 변방에 자리하는 이유가 오히려 신비합니다. 

자장율사(중국 <불사도설>, 사진출처 : 박호석 법사)
원효 진영(일본 고잔지 소장, 13세기, 사진출처 : 박호석 법사)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불교신문>의 원효에 대한 논쟁에서 “화쟁: 정확한 관점과 분석이 우선이다”(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라는 제목의 논고와 그에 대한 독자들의 반론, 그리고 그 반론에 대한 저자의 재반론들과 댓글까지 살펴보면서 그간의 앞의 의심이 일말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학교에서 원효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고 불과 1세기만에 등장하였지만 한국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였고, 불교에 대한 그의 해박하고 심오한 이해가 보살의 경지에 이른 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는 원효의 대표적인 화쟁(和諍)사상은 일심(一心)과 무애(無碍)를 기초로 여러 종파로 나뉜 불교의 이론과 사상을 하나로 회통하고, 승속은 물론 귀족과 백성, 즉 사회를 회통하는 실천적 사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240여권에 달하는 그의 방대한 저술은 중국과 일본의 불교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지요. 

사실 고려 숙종 때 내려진 원효의 시호(諡號)가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인 것을 보면, 대성(大聖)은 부처나 공자(孔子)에게나 붙일 수 있는 호칭임을 미루어, 원효도 그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많은 사찰의 개산조가 원효라거나, 땅의 이름까지도 원효와 관련지어 부르는 풍속이 유행한 것도 그를 기리고 경배하고자 한 일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자랑이자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원효를 ‘빛 좋은 개살구’, ‘원효의 망령’, ‘탕평채와 비빔밥’, ‘어쭙잖은 유심주의’, ‘원효의 광기’, ‘승단에 존재할 수 없는 시체’ 등의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속한 표현으로 비하하는 상식 밖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몰상식으로 선현을 모독하는 이가 다름 아닌 승려이자 불교언론의 논설위원이고, 또 승려를 교육하는 승가대학의 교수라는 사실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4호 범어사 원효대사 진영,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탈 (www.heritage.go.kr)

물론 이런 표현이 원효의 화쟁사상을 논하는 논쟁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논점이 화쟁을 알고서 말한 것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논의에서 벗어나 있는데다, 오히려 원효의 약점(?)을 비난하려는 자리에 화쟁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앞섰습니다. 사실, 불교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원효의 화쟁은 중도(中道)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중도는 곧 열반이며,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증험되는 사실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와서 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화쟁을 부정하는 것은 곧 불교를 부정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런 저급한 표현으로 대성을 비난하는 의도에는 다분히 한국불교식 승려우월주의가 자리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의 글에서도 승려가 아닌 거사(居士)는 성사(聖師)가 될 수 없다고 한 주장이나, 계를 파한 승려는 그의 전체의 삶과 사상이 어떠하든 승단에서 폐기되어야하는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대목에 그 속내가 보입니다. 게다가 논의와 관계없는 만해 한용운 스님까지 끌어다 비난한 것을 보면 그 의도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며 “여인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당부하신 유훈을 받들지 못하고, 승려가 바라이죄에 해당하는 불사음의 계를 수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추앙하는 선사들의 일탈은 무애행으로 미화하면서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삶을 사셨던 원효나 만해는 치워야할 시체라고 여기는 행태를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상식 밖의 논리와 저급한 표현으로 만인의 스승을 욕보인 일은 분명히 패륜입니다. 그것도 출가사문이, 스님을 가르치는 승가대학의 교수가, 불자들을 계도하고 정론을 펼쳐야하는 논설위원이 이런 패륜에 앞장서고 있는 작금의 한국불교의 현실에 오금이 저립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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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자 2019-12-26 08:07:33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어도 중들이 승상까지 내려놓기는 힘들거야. 자칭 소성거사로 승상을 벗어버린 원효대사님을 합장 공경합니다.   삭제

    • 다시 올림 2019-12-19 08:42:14

      <삼국유사>에 '원효불기(元曉不   삭제

      • 나무에게 2019-12-19 08:28:30

        <삼국유사>에 '원효불기(元曉不   삭제

        • 나무 2019-12-18 17:02:44

          부처님은 인도사람인데 왜 인도사람 믿고 있는지 자문합시다.
          정화과정에서 태고종이란 이름을 쓸수 없기에 쓰게된 이름이고
          말대로 승속이 없다면 중국과 한국이 있겠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출가비구를 위한 가르침이었다.
          물론 재가의 수행도 내치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이나 그 가르침에 귀의하는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살라는 것이지만
          승가에 귀의하란 것은 수행하고 포교하는데 현실적 조직의 필요성때문이다.
          원효나 만해를 따라하자며 조계종비구가 다 결혼해도 좋은가?   삭제

          • 이창희 2019-12-17 13:55:10

            짧은 댓글로 저의 생각을 전하기가
            어렵군요.
            네이버밴드 정말불교를사랑하는
            사람들 들어가시면 찾기에 제글 #진리 또는
            이창희 치면 제글을 읽어볼수 있습니다

            요약: 불교발상지 인도에는 불교인이 극소수 입니다. 왜? 세계 불교인도 타종교 대비
            %가 줄고 있는 이유?

            불교의 허울 좋은 방편?   삭제

            • 최강길 2019-12-17 08:33:50

              원효스님이 파계를 선언한 것은 승단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심으로 평등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중생세계에 다시 들어가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폄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에 원효스님이 파계를 했다고 중생세계에서 집착과 탐욕을 부렸다면 아마도 그는 파계승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파계승이 아닌 진정한 수도승인 것이다. 이름이 파계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석가세존께서도 라훌라에게 집착을 보여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피붙이이기 때문에 유산을 주고자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삭제

              • 최강길 2019-12-17 08:30:00

                요석공주와 같이 성관계를 가졌다고 그것이 진짜로 범계일까? 석가세존께서 여자와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제자가 부모님의 간청에 의하여 부인과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스님들은 밤중에 자면서 몽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효는 즉 집착없는 성관계를 가졌다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집착이 있었다면 아마도 설총에게도 눈길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것마저도 알기 때문에 파계를 선언한 것이다.   삭제

                • 법써니 2019-12-17 01:23:21

                  잘 읽었냐 땡중아?
                  자유롭게 살든지 중을 하는지 선택하라는거다
                  위선 떨지말고!   삭제

                  • 법진 2019-12-17 00:37:24

                    중국과 한국 일본의 역대 고승들 조차도 존경해마지않은 원효성사를 모독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삭제

                    • 걸레들의 념불 2019-12-16 17:04:46

                      자슥일당의 범계행위엔 눈 질끈감고 아부를 떠는 촉새같은 놈이 어쩐다고 원효성사,만해선사를 거론하며 주접을 떠는지 ...주딩이에 벼락을 마즐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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