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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폭2세 피해자 김형률 15주기 추모제5월 23일 국내 최초의 원폭피해자문제 자료관인 합천원폭자료관에서 추모제 열려
  • 김형률추모사업회_불교포커스
  • 승인 2020.05.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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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자 2세 고 김형률 활동가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한국인 피해자 2세로, 원자폭탄으로 인한 유전적 피해자임을 밝히고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의 실상을 알린 고 김형률의 15주기 추모제가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와 합천평화의집이 공동 주최하고 김형률추모사업회 주관으로 공동5월 23일 합천원폭자료관과 합천군 공설봉안담에서 열린다.

고 김형률은 2002년 ‘커밍아웃’을 통해 국내 ‘원폭2세 환우’ 존재를 알리고, 이어서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한국인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초대회장으로서 원폭2세 환우들에 대한 지원이 담긴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 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길 간절히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5년 5월 29일, 만 34세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병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역설하고 핵의 야만을 고발하였으며, 동시에 원폭2세 환우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주장한 반핵평화인권운동가였다.

지난 2016년 5월 19일, 19대 국회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나, 고 김형률이 살아 생전에 그토록 애썼던 2세 등 후손 관련 내용이 피해자 정의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실태조사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원폭피해자 2,3세도 피폭 영향으로 유전적 질환이 나타나고, 일반인보다 각종 암과 질병에서 3.4~94배 높은 질환율을 보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는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상정된 피폭 2세 등을 지원하는 개정안 제출에 미온적이다.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조속히 개정안을 제출하여 평생을 피폭의 굴레속에서 힘들게 살고 계시는 2,3세 등 후손에게 고통이 아닌 희망의 대물림을 선사해야 한다.

특히 이번 15주기 추모제는 유족과 관련 단체의 논의 아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협력으로 지난 5월 12일에 추모비석을 옮긴 장소인 합천원폭자료관 앞에서 열게 되었다. 또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청년들은 고 김형률 15주기를 기억하며 ‘추모의 글 남기기’와 ‘핵무기금지조약서명운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광복 75년, 원폭 75년, 김형률 추모 15주기를 맞이하여 고 김형률 추도식을 마친 이후에, 올해 5월 12일 고 김형률의 납골함을 이장한 합천군 공설봉안담도 방문하여 참배할 예정이다.

2017년 제14회 불교활동가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김형률추모사업회 (사진왼쪽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사무총장 대리수상,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한국원폭2세피해자 김형률의 활동 소개

▣ 2002년 3월 22일

- 한국 최초로 원폭2세 환우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힘. 대구KYC(대구 남구 봉덕3동) 사무실에서 부친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폭2세피해자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함.

- [한국원폭2세환우회] 결성 - 한국 원폭2세 환우 카페(www.http://cafe.daum.net/KABV2P) 를 만들어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알리고자 노력함.

▣ 2002년 5월

- 일본 히로시마 원폭건강센터에서 한국원폭2세로는 처음으로 형식적이나마 건강검진을 받음. 담당 의사가 정밀 검진을 권유함.

▣ 2002년 8월

- [대구전교조]와 [히로시마일교조]와의 역사교류회 참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사들에게 한국원폭2세환우의 문제해결을 호소함.

▣ 2002년 12월

- 부산에서 아오야기 준이치 (부산대), 조석현 (전교조) 등이 주축이 되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 결성.

▣ 2003년 5월

- [한국원폭2세 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한국원폭피해자와 한국원폭2세환우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의, 서울의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 추진함.

▣ 2003년 6월28일

- 서울에서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간담회󰡑개최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하 공대위)] 구성 결의함.

- 8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및 기자회견 가지기로 함.

▣ 2003년 7월26일

- 부산에서 "한일원폭2세회 심포지엄" 참가. [공대위] 심포지엄 참관 및 [공대위] 2차회의 개최함.

▣ 2003년 8월 5일

-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기자회견 가짐.

- 8개 시민단체와 함께 [원폭 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함.

-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진상규명을 골자로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함.

▣ 2004년 8월

- [국가인원위원회],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함(2004년 8~12월, 5개월간)

▣ 2005년 2월 14일

- [국가인원위원회], 국가기관 최초로 원폭 1세·2세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함. 조사결과,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모두 일반인들에 비해 질병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남.

▣ 2005년 4월 12일

­ [공대위]와 함께 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대책 촉구 및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의견청원 기자회견 개최. 원폭피해자 단체(한국원폭2세환우회와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외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연명하여 국회에 특별법 제정촉구를 골자로 하는 청원서를 제출함(소개의원: 민주노동당 조승수의원)

▣ 2005년 5월

- [공대위] 확대 개편 결정, 이에 따라 공대위 명칭을 [원폭피해자 및 원폭 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로 변경함(소속단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한국원폭2세환우회 포함 8개 단체)

- 5월 18일, 국회에서 개최한 ‘원폭폭탄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 방향’ 토론회 참가

- 공대위와 함께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피해자를 대상으로 평택의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기호지부의 사무실과 합천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인권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관한 설명회’개최

- 5월 19~ 26일, 일본 도쿄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참여

- 5월 27일,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15차 회의에 건강악화로 불참

- 5월 29일, 오전9시 5분경, 부산시 동구 수정4동 수정 아파트에서 끝내 숨지다.

- 5월 31일, 부산대병원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부산 영락공원에 유해가 안치됨.

유족의 글 - 15주기 추모제를 맞이하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언젠가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만 지나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흐름이 너무나도 빠름을 느낍니다. 문득 오래 남아있을 줄 알았던 추억들과 그때의 감정들이 시간을 따라 야속하게도 모두 흐려져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제 일상을 살아가다보니, 가슴속에 오래 간직할 줄만 알았던 그리움이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삼촌이 제 마음속에 살아계실 것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추모식에서 처음 알게 된, 시를 사랑하고 글을 사랑했던 삼촌의 젊은 날들은 제게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삼촌이 그랬듯이, 저 또한 글을 사랑하기에 가끔은 제가 글을 쓰고 책을 즐겨하는 것에 대해 삼촌과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지를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삼촌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삼촌의 삶이 참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에서라도 지난날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가슴속에 묻혔던 삼촌을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삼촌이 바라보았던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야 저는 삼촌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그 말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끊임없이 박동하여 살아내고야 마는 삼촌의 의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삼촌이 참 멋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삼촌이 보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의 제가 알지 못했던 삼촌의 모습들이 뒤늦게 다가와 삼촌을 기억하고 나니 함부로 삼촌이 그립다고 말했던 제가 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마냥 어린 마음에 너무도 가볍게 말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떠나간 이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추억은 그저 지난 기억이 되고, 삼촌의 삶도 삼촌의 것으로만 남아 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 삼촌의 치열한 삶이 진정으로 마음에 닿게 되니 그때의 제가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잊혀가는 기억들이 아쉽고 삼촌이 정말로 그리워졌습니다. 이제는 삼촌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삼촌의 시간은 더 흐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삼촌의 삶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삼촌의 그 말로 늘 삼촌을 기억하니까요. 비록 흐려지는 기억이라도, 삼촌은 제 안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삼촌의 시간이 멈춰있더라도 삼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삼촌의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감히 확신해봅니다. 이제는 정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삼촌을 모르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정말로 제 가슴속에 살아있는 삼촌을 느낀다고, 삼촌이 너무나도 존경스럽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020. 05. 23. 조카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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