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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 1년, 한일관계의 본질을 재확인하다

대법원 판결, 수출규제, GSOMIA의 트릴레마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부터 1년이 지났다. 작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한 뒤 7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8월 2일에는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이에 대응해 우리 정부도 일본에 대한 수출관리를 강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한편, 일본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것에 맞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를 통보하는 것으로 맞섰다. 

 GSOMIA 파기를 6시간 남긴 작년 11월 22일 저녁, 수출규제 해결을 위한 양국 간 국장급 협상을 개최하기로 하는 대신에, 한국이 협정 종료를 유예하고 WTO 제소절차를 중단함으로써 한일관계는 가까스로 봉합되었다. 일본 측은 3대 수출규제 품목에 대해서는 한일 공동조사를 통해 관리 방안을 새로 마련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 뒤 우리 정부는 올해 5월 12일, 수출관리 조직 인력 미비, 재래식 무기에 대한 통제 미흡, 한일 정책대화 중단 등 일본 측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제기했던 문제들이 모두 해소되었다는 입장에서 5월 31일을 시한으로 규제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철회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우리 정부는 6월 2일 WTO에 다시 제소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튿날인 6월 3일에는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에 대해 국내자산 압류명령 결정을 전하는 ‘공시송달’을 단행해서 현금화 절차가 개시되었다. ‘공시송달’이란 당사자에게 직접 서류가 전달되지 않아도 법원에서 일정 기간 서류를 공개함으로써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소송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일본제철 측에 전달하지 않고 반환해 오고 있었다. ‘공시송달’로 실제 서류가 송달되었다고 간주되는 시점은 8월 4일 0시다. 이후 법원은 2-4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채무자 심문 과정을 거친 뒤 현금화 명령을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게 된다. 

예상되는 일본의 조치와 한계

 우리 측의 움직임에 맞서 일본 정부는 ‘두 자리 수’ 보복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예상 가능한 조치들로 주한 일본대사 소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한국인의 입국비자 심사 강화 등의 외교적 압박, 일본 내 한국기업의 세무조사 강화와 무역보험 적용 대상 제외, 일본 거주 한국인의 본국 송금 규제, 한국제품 수입에 대한 관세 강화, 한국에 대한 부품, 소재 수출 추가 규제 등의 경제적 조치, 한국기업에 대한 투자 자금 회수 등의 금융제재,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 거부 등 국제사회에서의 압박, 유엔 대북제재 해제 반대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직접 개입 등이 거론된다.

 주한 일본대사 소환은 현금화 이후 한일관계 악화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복귀 기한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쉽게 선택하기 어려우며, ICJ 제소는 한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이 단독으로 선택할 수 없다. 기타 경제적 조치 발동과 금융제재는 2차 한일무역전쟁이 개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또한 결코 일본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11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3품목에서 공급 안정화가 실질적으로 달성되었다고 평가했다.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 등으로 ‘탈일본화’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평가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규제로 피해가 예상되었던 100개 품목 가운데 76개 품목은 대체품이 확보된 상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 만이 아니라, 식품업체에서도 탈일본화가 추진되고 있어서, 미강추출물이나 제과용 향신료 등도 국산화에 성공하고 공급선을 국내업체로 변경하고 있다.

 작년의 수출규제 조치와 올해 코로나19 사태 하의 입국금지 조치 등으로 한일 경제관계는 실질적인 디커플링 상황이라 일본의 경제적 조치들이 한국에 가할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오히려 수출규제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일본 기업들이 입었다.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영업을 축소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 미러리스 카메라 분야를 선도해 온 올림푸스를 비롯하여 닛산, 미즈노와 일본맥주의 아사히, 기린 등이 철수하거나 매장을 정리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처럼 한국에 진출한 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이 일본 제품 보이콧으로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으며, 도쿄올림픽 연기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기초 체력마저 잃고 있어서, 한일무역전쟁 재개는 일본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전개될 반한활동이 될 것이다. 이미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도전에 일본 외교가 총력을 기울여 낙선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G7에 초대한 데 대해서도 발목 잡기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반중 전선을 흐트러뜨린다는 게 명목이다. 

볼턴이 드러낸 일본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견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초기단계에서 일본이 이미 요소요소 훼방을 놓아왔다는 것도 이번 볼턴의 회고록을 통해 확인되었다. 볼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열흘 앞둔 2018년 4월 18일 마라라고에서 열린 회담에서 트럼프에게 “북에 대한 최고의 협상무기는 군사적 압박”이라고 훈수를 두며, 미국의 시리아 공습이 북한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트럼프를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북한이 포기해야 할 리스트에 중단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 

 5월 4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정의용 안보실장이 비공개로 백악관을 방문한 직후 야치 쇼타로(谷内正太郎)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바로 백악관으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찾아가 미국의 ‘낙관론’에 우려를 나타내며, “서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에 맞서고 싶어 했다.” 그 자리에서 야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는 고정불변”이며 북핵 폐기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주류인 매파들과 일치된 주장을 볼턴 앞에서 펼쳐 보인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28일에 아베는 트럼프와 전화회담을 갖고 마라라고 미일정상회담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다시 확인했다. 나아가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약속이 필요하다고 대북 강경론을 주문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5일 앞으로 다가온 2019년 6월 7일에도 아베는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하루 앞서 일부러 워싱턴에 들러 트럼프와 회담을 하고, “거칠고 약삭빠른” 북한에 과도하게 양보하지 말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에는 전 세계 지도자 중에 거의 유일하게 하노이 노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트럼프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오사카 G20 참가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을 평가절하한 데 대해, 아베는 유엔 안보리결의 위반임을 강조하면서 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동을 강행하자, 일본이 취한 행동이 수출규제조치의 발동이었다.

 볼턴 회고록에는 수출규제조치를 실행한 일본이 미국을 통해 한국 압박의 끈을 더욱 동여매고 있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작년 7월 중순, 미일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일본을 방문한 볼턴 보좌관에게 야치 국장은 협상의 상당 부분을 의제도 아닌 한일관계에 할애해서 설명했다고 한다. 야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흔들고 있다며, 한일기본조약은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한국에 대한 모든 보상 문제를 마무리한 조약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볼턴은 일본이 한일기본조약 방식으로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것이며, 막대한 경제지원 의사를 갖고 있지만, 한국과의 1965년 조약이 부정된다면 북한과도 같은 조약을 맺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방일 직후 서울을 방문한 볼턴에게 정의용 실장도 1965년 기본조약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은 조약을 훼손하고 있지 않으며, 대법원 판결이 이행되어야 하기에 이를 존중했을 뿐인데,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협박해서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또한 볼턴은 한달 동안의 현상동결(standstill agreement)을 제안했다고도 하는데, 이에 대해 한국이 긍정적이었던 데 반해 일본은 부정적이었다. 다만 일본은 출구전략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볼턴은 전하고 있다. 

한일 1965년 체제와 GSOMIA

 볼턴의 회고록에서 다시 한일 ‘1965년 체제’의 존재가 확인된다. 한국 측은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이 1965년 기본조약과 관계가 없으며 병립가능하다는 것인데 반해, 일본 측은 대법원 판결이 기본조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를 판가름하는 것이 결국 전범기업 압류자산의 현금화 조치에 달리게 되었다.

 이제 한일관계의 미래를 좌우할 현안들이 초읽기에 들어서고 있다. 현금화에 나서기 위해 6월 4일 자산압류 결정문이 공시송달된 이후 본격적인 현금화 개시가 가능해지는 8월 4일, 위안부 기림일인 8월 14일, 그리고 광복절인 8월 15일을 거쳐, GSOMIA 재연장 여부 결정 시한이 8월 23일 0시로 다가오고 있다. 수출규제조치 철회를 조건으로 종료 통보 효력이 정지된 GSOMIA는 일본이 수출규제조치의 철회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유지할 명분이 없다. 그 논리적 귀결은 폐기를 통보하는 일이다. 

 사실 GSOMIA는 일본 측이 더 적극적이었으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이후로는 한일 간 불균등한 정보교환 가능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 군이 곧 군통신위성 아나시스2호를 쏘아올릴 예정인데다 조만간 군정찰위성도 확보한다면 세계 10번째 군사위성 보유국이 되어 일본과의 정보공유 필요성은 낮아진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이후 한국 입장에서 GSOMIA는 이와 상충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작아졌으며, 일본에게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제할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GSOMIA는 샌프란시스코 냉전체제의 하위체제인 한·미·일 삼각안보협력 체제와 한일 1965년 체제를 강화하는 고리로서, 미중 신냉전 회피, 한반도 냉전 종식, 한일 1965년 체제 극복을 추구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존치 이유가 없는 협정이다. 

 그럼에도 GSOMIA 폐기는 몇 가지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GSOMIA 폐기 카드는 연장 결정일인 8월 23일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8월 4일 현금화 절차가 개시되면, 일본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보복조치에 나설 것이나, GSOMIA 폐기 결정일을 앞두고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 거꾸로 GSOMIA 폐기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일본이 보복의 수위를 조절하면 우리는 GSOMIA 폐기 통보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는데, 일본이 이를 자동 연장된 것으로 간주하여 그 뒤에 가서 보복의 수위를 본격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언제든 GSOMIA 종료 통보가 가능하다는 일관된 입장을 8월 23일의 종료 결정 통보 기한과 무관하게 견지한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GSOMIA 폐기 수순을 염두에 두고 그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사전에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특히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한 일본 측 논리의 허술함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국제법학계, 헌법학계의 논의와 일본 사법부의 판례 등에서 일본 정부의 이중 기준을 지적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재산권 다툼에 대한 일본 사법부의 판단(고카료[光華寮] 소송), 미군기지 반대 운동 주민들의 행동에 대해 일본 헌법을 미일안보조약에 우선하여 내린 판례(스나가와 소송) 등이 자국법이 국제조약에 우선한다고 판결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의 이중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따른 현금화 일정과 수출규제조치 철회를 조건으로 한 GSOMIA 종료 통보 일정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8년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해로 시작되어 한일관계 악화의 해로 저물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한과 미국의 세 정상이 회동한 직후인 7월 1일에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발동한 것도 역시 우연이 아니다. 

 지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1년은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불가분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시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체제와 1965년 조약체제를 동시에 극복하는 큰 그림이 없이는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풀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나 미국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며, 더 큰 국제관계의 맥락에서 냉전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새로 재편된 청와대, 정부의 외교안보 인사들은 그에 걸맞은 안목과 실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끝)

정토회 부설 평화연구원 평화진단 제 237 호  2020년 7월 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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