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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정상화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자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의 혼란이 수습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진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연방총무청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화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이양 작업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바이든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두고 새 행정부 구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첫 작업으로 바이든 당선인은 11월 24일,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임명했다. 

 블링컨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시아 재균형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 강화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한·일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아베 수상의 역사수정주의적 움직임에는 제동을 거는 모습도 보였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진짜 이빨이 있는(with real teeth)’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주도하기도 했다. 야인이던 2017년 한반도 위기 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비치던 군사적 해법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비판하며 압박의 지속을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은 북한 체제 붕괴론에 입각해 있었다. 북한의 체제 붕괴에 대비해서 한·미·일에 더해 중국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블링컨이 ‘전략적 인내’ 정책의 입안자라는 평가도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블링컨과 함께 외교안보 실무를 담당했던 브라이언 매키언 전 국방부 수석부차관은 이를 부정했다. 그에 따르면 ‘전략적 인내’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지침인 적은 없었다. 나아가 그는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제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외교적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며, 비핵화를 위해 필요한 실제적 전략의 일환이라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미 정상회담도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즉 비핵화의 보상으로 제재해제라는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와 북·미간 적대관계 해소를 동시에 실현하는 과정에서 행동 대 행동을 매개하는 교환재가 대북제재라는 것이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이란 방식’을 주장했던 적이 있다. 그 또한 외교를 복원하여 실무협상을 통한 단계적 접근을 중시하며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공조를 중시한다. 그 모델이 이란 핵합의다. 이미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 외교 총책임자로 활동하던 시절, 설리번은 “북한에 대해 이란에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링컨도 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블링컨은 이란 모델이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란 핵 합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으로 불리는 것으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억제와 국제사찰을 대가로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볼턴의 영향으로 ‘선 핵폐기, 후 경제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에 미련을 갖고 있던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보다 북한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 방법은 시간이 걸린다. 그 성패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스테이지2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외교가 추구하는 ‘정상으로의 복귀’

 바이든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은 트럼프의 지난 4년을 일탈로 규정하고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이다. 외교안보 분야 인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미국이 돌아왔다”며, 그의 외교안보 팀이 “미국이 동맹들과 함께 할 때 가장 강력하다”는 믿음을 구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정상으로의 복귀는 외교 내용면에서 미국 우선주의로부터 동맹 강화와 다자주의로의 복귀이며, 외교 형식면에서 정상들의 ‘밀당’으로부터 외교관들의 실무협상으로의 전환이다. 그것의 동북아적 표현은 한·미·일 삼각안보협력 체제의 복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복귀하고 싶은 ‘정상’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첫째, 트럼프 이전의 ‘정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변수가 중국 요인이다. 그에 따라 미·중관계가 예측불허의 전개를 보일 수 있다. 미·중관계와 관련하여 바이든 팀 안에서도 전선이 형성되어 벌써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둘째는 코로나19 사태가 길게 영향을 미치며 미국의 국내외에서 예측불가 사태를 만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국제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상당히 길게 가면서 국제질서 그 자체를 변혁시킬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바이든 당선인 팀의 외교안보정책이 입각하고 있는 ‘자유주의’ 세계관이 미국 국내외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국제적으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가 그것이다. 바이든의 딜레마는 돌아갈 정상이 없는 상태에서 ‘정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는 데서 나온다. 

 바이든의 승리가 가시화하면서,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의 외교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다 더 커진 예측불허의 공간에서 예측 가능한 공간을 복원하고 확대하는 것이 여러 국가의 외교 목표가 되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의 움직임

 최근에 활발해진 한·일 간 요인들의 왕래는 한국과 일본이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한·일관계를 예측불허의 공간에 두는 것이 두 나라 정부 모두에게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한·일 양국 정부가 동시에 ‘정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겉보기에 한국 측 요인의 일본 방문이 두드러지지만, 이는 일본 측의 태도변화로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변화의 조짐은 아베 내각에서 스가 내각으로의 변화에서 나타났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대법원 판결 이행과 관련해서 아베 시기 일본 정부는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이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방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한국 측의 어떠한 제안도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아니면 듣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9월 16일, 스가 내각 출범에 즈음해서 유임된 모테기 도시미츠 외상은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이 문제임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다만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여,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는 작지만 큰 변화였다. 적어도 한·일 간에 투트랙 접근의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10월 들어서는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이 방한해서, 정부와 정당 요인들을 면담하고 돌아갔다. ‘문희상 안’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도 변화였다. 그런 한편 일본은 올 연말까지 서울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에 스가 수상이 참석하기 위해서는 현금화 중지의 약속이 필요하다는 말을 흘리면서 압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한·일-북·일관계

 이후 미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한·일 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11월 8일에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12일에는 김진표 의원 등 한일의원연맹의 의원들이 방일해서 스가 수상과 면담하고 돌아왔다. 한일의원연맹과 스가 수상의 면담에 동석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스가 수상이 “한국 측이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생각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일본 측이 한국 측에 사용하는 문구가, ‘한국이 시정하라’에서 ‘한·일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로, 그리고 ‘한국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실적 해법에 문을 열어둔 발언으로 들린다. 

 스가 내각은 북한에 대해서도 종래의 ‘아베 3원칙’을 슬그머니 내리고 있다. ‘아베 3원칙’이란 ‘납치문제가 대북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제1원칙, ‘납치문제 해결 없이 국교정상화 없다’는 제2원칙, ‘모두가 살아 돌아오는 것만이 납치 문제의 해결’이라는 제3원칙이다. 스가 내각은 이 가운데 제1원칙만을 거듭 강조하면서, 제2, 제3의 원칙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볼 때, 스가 내각은 북·일관계에서도 아베 수상과는 다른 접근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스가 총리는 지난 10월 26일의 소신표명 연설에서 북·일관계를 높은 비중으로 언급해서 주목을 받았다. 일본 외교에도 현실주의가 돌아오고 있다. 

 지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과정에서 일본은 ‘장외 외교’를 벌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여섯 번, 문재인 대통령이 네 번, 트럼프 대통령이 세 번, 그리고 푸틴 대통령도 한 차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논의하는 동안, 아베 수상은 단 한 번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북·일관계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인데, 결국 아베 수상의 ‘장외 외교’로 속도가 떨어지면서 북·미 대화는 정체상태에 들어갔다. 이 과정을 복기하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데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조건

 그렇다면 북·일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스테이지2의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일관계는 조속히 ‘정상으로의 복귀’를 이루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해생존자가 배제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현실적이면서도 이 원칙을 만족시키는 해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극복하여 한·일관계가 정상화된다면, 1998년에 개시된 동북아-한반도 화해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도로 만들어진 1998년의 한·일 공동선언은 2000년의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졌고, 두 공동선언의 주역인 한국 정부가 중재하여 2002년의 북·일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트럼프-아베’에 대신해서 들어선 ‘바이든-스가’ 조합이 한국 정부에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로 시작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스테이지2에 올려놓아야 한다. 블링컨과 설리번을 앞세운 바이든의 실무형 대북 접근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확실한 성과를 내기에 이르도록 하려면 지금 우리가 서둘러 풀어야 할 과제는 한·일관계 정상화다.[끝]

정토회 부설 평화연구원 평화재단 제 245 호  2020년 11월 2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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