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학술
문경 봉암사 마애여래좌상 등 조선 시대 불교문화재 4건 보물지정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 등 2건은 보물지정예고
  • 문화재청_불교포커스
  • 승인 2021.01.07 17:02
  • 댓글 0
보물 제2108호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사진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월 7일 '문경 봉암사 마애여래좌상'등 조선 시대 불교문화재 4건을 보물로 지정하고,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과 '구미 대둔사 경장'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하였다. 이에 앞서 12월 22일에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를 보물로 지정하였다.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등 조선시대 불교문화재 4건 보물 지정

보물 제2108호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백운대)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108호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聞慶 鳳巖寺 磨崖彌勒如來坐像)'은 1663년(현종 4)에 제작된 마애불로서, 경북 봉암사 옥석대(백운대라고도 함)에 위치해 있다. 제작 시기와 주관자, 존상(尊像) 명칭은 풍계 명찰 스님(楓溪 明察, 1640∼1708)의 문집 '풍계집(楓溪集)'에 수록된 '환적당대사 행장(幻寂堂大師 行狀)'을 통해 확인된다. 명찰스님은 17세기 환적당 의천스님(幻寂堂 義天)의 제자로, 이 책에 의천스님이 발원해 마애불을 조성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환적당 의천스님은 1603년(선조 36)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여 세수 60세(1662년)부터 61세까지 봉암사에서 수행하였고 1690년에 세수 88세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행장에 따르면 의천스님은 봉암사 백운대에 이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조성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환적암(幻寂庵)을 지었다고 한다.

  좌상은 높이가 539.6cm, 너비가 502.6cm 정도이며 머리 주변을 깊게 파서 광배 형상을 만들고, 위는 깊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얕은 부조(浮彫)로 처리됐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눈매, 단정히 다문 입 등이 자비롭고 인자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얼굴과 자세, 착의법 등 세부표현에서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탱'(1622),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1653년) 과 같은 17세기 괘불(掛佛) 표현요소를 찾아 볼 수 있어 불화와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불상의 수인(手印, 불보살을 상징하는 손모양)은 미륵불의 수인 중 하나인 용화수인(龍華手印)으로, 두 손으로 긴 다발형의 꽃가지를 쥐고 있는 모양이다. 1663년이라는 뚜렷한 제작연대를 염두에 둘 때 마애불 도상이 확인된 기준작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문헌을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 동기, 주관자, 도상 등에 대해 고증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마애불이라는 점, 조선 후기 마애불 연구뿐만 아니라 미륵불상의 도상 연구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학술 가치가 높다. 또한, 사실적인 조각수법과 당대 불화와 연관성이 있는 창의적 표현 등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109호 '미륵원'명 청동북 앞면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109호 '미륵원'명 청동북 명문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109호 "'미륵원'명 청동북('彌勒院'銘 金鼓)"은 옆면에 오목새김(음각)으로 새긴 명문을 통해 1190년(고려 명종 20년) 미륵원(彌勒院)에 걸기 위해 제작한 금고(金鼓)임을 알 수 있다. 

미륵원은 충남 공주에 있었던 사찰 인제원(仁濟院)의 후신(後身)으로, 고려 시대 잠시 운영되는 동안 사용되었던 사찰 명칭으로 보이며, 1530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될 당시에는 다시 원래의 명칭인 인제원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북은 사찰의 일상적 불교 의례에서 사용하는 불교의식구(佛敎儀式具)이자 범음구(梵音具)인 청동제 금고(金鼓)로서, 금구(禁口), 반자(盤子), 쇠북 등으로 불리며, 공양(供養)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을 모을 때 주로 사용한다.

현존하는 청동북은 공명구의 위치와 형태에 따라 두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중에서 "'미륵원'명 청동북"은 뒷면이 뚫려 있는 형식으로, 이를 반자(盤子, 飯子, 半子, 判子, 般子)라고도 한다.

  3개의 뉴(鈕, 손잡이)를 가진 전형적인 고려 시대 청동북으로, 안쪽에는 16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 당좌(撞座)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당좌 안에는 14개의 연꽃 씨가 돋움새김(양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표면이 다소 마모되어 원래 금속 색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지만, 얕게 도드라진 양각으로 표현된 연꽃잎들의 배치가 균형감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미륵원'명 청동북"은 12세기 청동북 중에서 비교적 큰 크기의 대형 청동북이며, 문양의 조각 솜씨가 좋고 주조 기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청동북의 제작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확실한 제작 연대와 명칭, 발원자와 사찰명 등이 확인되는 귀중한 작품으로서, 보물로 지정하기에 충분하다.

보물 제2110호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 - 괘불도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110호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 - 괘불도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110호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固城 玉泉寺 靈山會 掛佛圖 및 函)'은 1808년(순조 8) 수화승(首畵僧, 불화 제작 등을 담당한 스님화가 집단 중 으뜸이 되는 인물) 평삼스님(評三)을 비롯해 18명의 화승들이 참여해 제작한 것으로, 20폭의 화폭을 붙여 높이 10m 이상 크기로 만든 대형불화다. 도상(圖像)은 석가여래 삼존과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6존의 부처를 배치한 간결한 구성이다. 화기에 '대영산회(大靈山會)'라는 화제가 있어 영산회 장면을 그린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괘불도(掛佛圖)는 야외에서 거행되는 영산재(靈山齎), 천도재(遷度齋) 등 대규모 불교의식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불화로, 보통 10m가 넘는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색채, 장엄한 종교의식이 어우러져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힘든 유ㆍ무형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옂ㄴ다.

  평삼스님은 40여 년간 활동한 이력에 비해 남아 있는 작품이 약 11점으로 많지 않지만, 이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는 그가 본격적으로 수화승이 되어 17명의 대단위 화승들과 합작해 제작한 대표작 중 하나이다.

  날씬한 신체와 둥근 얼굴에 가늘게 묘사된 이목구비, 어린아이에 가까운 얼굴, 화려한 문양과 두터운 호분(胡粉)을 덧발라 입체감을 준 기법, 적색과 녹색, 청색과 흰색 등 다양한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한 점 등은 18세기 후반 괘불도 양식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18세기 전통 화풍을 계승하고 있는 가운데, 색감이나, 비례, 인물의 표현, 선묘 등은 19세기 전반기 화풍을 반영하고 있어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므로, 불교회화사 연구에 의미가 큰 작품이다.

보물 제1219-4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첫장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1219-4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1219-4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1219-4호'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卷上一之二)'는 중국 당나라 규봉(圭峰) 종밀스님(宗密, 780∼841)의 초본(鈔本, 베낀 글)에 세조가 한글로 구결(口訣)한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1465년(세조 11년) 주자소(鑄字所)에서 금속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간행한 것으로 줄여서 '원각경(圓覺經)'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대승경전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이후 사찰에서 수행을 위한 교과목 중 하나로 채택되어 널리 유통되었으며, 마음을 수행해 원만한 깨달음(원각, 圓覺)에 이르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을유자'는 을유년인 1465년에 주조한 금속활자로, '원각경(언해)'을 간행하기 위해 한글 활자를 별도로 만들었으므로 이를 '을유한글자'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활자가 단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오래 사용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1484년(성종 15년, 갑진년) 갑진자(甲辰字)를 새로 주조할 때 녹여서 사용했으므로, 종류와 현존 예가 극히 드물다. 더욱이 이 을유자와 을유한글자로 찍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은 완질(完帙)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전래본도 많지 않은 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 1의2'는 전래되는 판본이 적은 귀중본으로서, 15세기 국어학과 서지학, 금속활자 인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경 봉암사 마애여래좌상' 등 4건에 대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 등 조선시대 불교문화재 2건 보물 지정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사진출처 : 문화재청)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 구리거울과 복장주머니 (사진출처 : 문화재청)

한편, 새롭게 보물로 이번에 지정 예고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 및 腹藏遺物)'은 높이 11m에 이르는 대형 불화 1폭과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腹藏囊), 복장낭을 보관한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불화와 함께 복장유물을 놓은 복장낭이 온전하게 일괄로 남아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괘불도는 1776년(정조 1) 조선 후기 대표적 수화승 유성스님(有誠)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화승 23여명이 참여하여 제작한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또한, 조선 17‧18세기 제작 괘불이 여러 번 보수를 거치는 동안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것과 달리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이 괘불만의 독보적인 가치로 꼽을 수 있다.

  화면 중앙에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된 건장한 체구의 석가여래는 마치 앞으로 걸어 나오는 듯 다른 존상들보다 돋보이게 표현하였고, 옷 주름은 명암과 아기자기한 문양을 넣어 입체적이다. 좌우, 위아래에 배치된 보살과 사천왕, 용왕과 용녀 등의 모습 또한 권위적이지 않은 친근한 얼굴에 존격(尊格)에 따라 신체의 색을 달리 하여 강약을 조절한 점 등 작자의 재치와 개성을 발휘해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18세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구미 대둔사 경장 (향좌측)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구미 대둔사 경장 (향우측)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구미 대둔사 경장 내부 불화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구미 대둔사 경장(龜尾 大芚寺 經欌)'은 1630년(인조 8)에 조성된 경장(불교경전을 보관한 장)으로,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매우 희소한 사례다. 경장으로서는 국보 제328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醴泉 龍門寺 大藏殿과 輪藏臺)'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목공예품으로 경장을 비롯해 목어(木魚), 불연(불연, 의식용 가마), 촛대, 업경대(業鏡臺,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추는 거울), 대좌(臺座, 불보살이 앉은 자리), 불단(佛壇) 등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으나, '구미 대둔사 경장'처럼 제작 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구미 대둔사 경장'은 왼쪽 경장의 뒷면과 밑면에 제작 시기와 제작자, 용도 등을 두루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목공예를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전체적인 형태는 장식성이 강한 화려한 기법 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이며, 좌우 정면에 큰 연꽃과 모란을 배치해 조각과 회화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 경장은 좌우 경장의 문짝 안쪽에 각각 2구씩 그려진 사천왕상을 배치해 원래부터 한 쌍으로 제작되어 대웅전의 불단 좌우에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일부 수리된 부분이 있지만, 제작 당시의 문양과 채색 기법을 상실하지 않고 대부분 간직하고 있어 17세기 채색기법 연구와 선묘불화(線描佛畵)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사천왕도는 17세기 선묘불화의 유일한 사례로 주목된다. 

  명문을 통해 제작시기와 제작 장인을 명확히 알 수 있어 학술ㆍ공예사 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규모가 크고 조형적으로 우수하여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의 편년과 도상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 등 2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 본 저작물은 문화재청에서 2021년 1월 7일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새소식 > 보도/해명 > 완벽한 형식과 압도적인 규모의 조선왕실 공신 문서 '20공신회맹축'국보 지정 예고 (작성자 :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2020년 12월 22일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새소식 > 보도/해명 > '기사계첩 및 함'국보 지정 ‧ 말모이 원고 등 6건은 보물 지정 (작성자 :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에서 무료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문화재청_불교포커스의 다른기사 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