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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태극기, 보물 지정 예고
  • 문화재청_불교포커스
  • 승인 2021.08.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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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태극기(앞면) (사진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항일독립유산들을 대거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등록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8월 12일에 열린 제4차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ㆍ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태극기 3건을 이번에 보물로 추가 지정 예고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번에 지정 예고한 진관사 태극기 등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다.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과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이자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을 해체ㆍ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신대한', '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에 주석하던 백초월 스님 또는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스님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백초월 스님은 3.1만세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하였다. 또한 태극기가 싸고 있던 자료들이 1919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되어 국내에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를 감추기 위해 태극기에 싸서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되었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에도 태극기와 태극문양 및 태극기 관련 기사가 실려 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특히, 태극과 4괘가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나 만물의 생성ㆍ변화ㆍ발전하는 모습을 의미한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힘과 사랑'을 토대로 '자유와 평등'을 온 세상에 실현해나가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독립신문은 당시 태극기에 대한 인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진관사 태극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도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부분과 4괘를 검정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문화재청은 '진관사 태극기'에 대해 ▲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 ▲ 항일 정신을 형태상으로 강력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 ▲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를 통해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ㆍ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해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며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취지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 '진관사 태극기' 등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태극기가 발견된 진관사 칠성각 (사진출처 : 문화재청)
진관사 태극기 발견 당시 사진 (사진출처 : 문화재청)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제30호) (사진출처 : 문화재청)

[참고] 진관사 태극기와 발견된 독립신문류 현황

자료명/발행일/수량/비고

신대한신문

제1호 1919년 10월 28일 화요일
제2호 1919년 11월 3일 월요일
제3호 1919년 11월 12일 수요일

3점

단재 신채호가 발간한 신문으로 국내에 새롭게 알려짐

독립신문

제30호 1919년 11월 27일(2점)
제32호 대한민국 원년 12월 25일(2점)

4점

특히, 제30호에는 '태극기'라는 제목의 시(詩)가 수록되었음

조선독립신문

<호외>
제32호 1919년 6월 6일
제40호 1919년 8월 12일
제41호 1919년 8월
제42호 1919년 8월 20일

5점

자유신종보

제4호 미확인
제7호 대한민국 원년 9월 19일
제12호 대한민국 원년 10월 6일(4점)

6점

중국 상해에서 발간된 독립운동계 신문으로, 최초 공개된 자료

경고문

1919년 6월 1일

1점

민중들에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고한 경고문으로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

* 본 저작물은 문화재청에서 2021년 8월 12일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새소식 > 보도/해명 > 항일독립유산, 보물과 등록문화재 된다 (작성자 : 문화재청)'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에서 무료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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