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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와 부처님의 범단벌
  • 박호석 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21.09.13 11:14
  • 댓글 4

  얼마 전, 천년고찰인 내장사 대웅전이 잿더미가 되었지요. 636년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내장사는 조선조 중종 때 도둑의 소굴이라고 불태워진 일이 있었고,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의 전란에서 다시 소실되는 불운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8년에 정읍에 있었던 보천교의 보화문을 이축하여 대웅전으로 썼는데, 이마져도 누전화재로 소실되어 2015년에 다시 지은 것이 이번 방화로 타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내장사 부처님은 화마(火魔)와 함께 계시는 듯.

 

화재 당시 현장에서 붙잡힌 방화범은 놀랍게도 새내기 승려였고, 경찰에서 진술한 방화 동기가 동료 스님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이 서운해서 그랬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물론 동료 스님들은 왕따나 서운하게 할 만한 대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폭력의 하나로 청소년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왕따가 절집에서까지 논란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원래 왕따는 학교에서 어떤 특정 학생을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청소년 사이에서나 쓰는 비속어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군대와 직장 등, 공동체 영역으로 확대되어 요즈음은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따돌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왕따의 원류를 거슬러보면 부처님이 원조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근거는, 세존께서 열반하실 당시에 승단에서 골칫거리였던 찬나 비구의 징계 문제를 아난다 존자가 여쭌 일이 있었는데, 이때 부처님이 제정하신 '하느님의 벌'이 바로 왕따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때 찬나 비구를 왕따 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인 왕자 시절의 마부였던 찬나는 부처님과 생일까지 같은 동갑내기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찬나는 유성출가라고 하는 불교의 역사적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그 또한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요. 그런데 찬나는 왕자를 모실 때의 버릇 때문인지 몰라도, 부처님에게는 최상의 존경과 경배를 다 하지만 동료 비구들에게는 매우 무례하고 악의적이고 상스런 욕지거리를 해서 승가의 화합을 깨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구들이 세존께서 임종하시는 자리에서조차 찬나 비구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아난다 존자가 골칫거리 찬나 비구의 징계문제를 여쭙게 된 것이지요. 
  
  "찬나 비구는 출가하기 전의 옛날 버릇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어떻게 처벌해야 합니까?"
  "아난다야, 내가 열반에 든 다음에 찬나 비구에게는 '하느님의 벌'을 내려야 한다."
  "하느님의 벌이 어떤 것입니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하게 두되, 다른 비구들은 그와 이야기하거나 충고하거나 가르침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디가니까야>, '반열반대경') 

 
  범단벌(梵檀罰)로 한역된 이 벌은 아난다 존자가 어떤 벌인지를 여쭌 것으로 보아 이전에는 시행된 적이 없던 새로운 벌이고, 부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범단벌은 벌 받을 사람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던 대중은 상관하지 않고 대꾸하지 말라는 것인데, 요즈음 말로하면 왕따, 즉 집단 따돌림과 형식이 동일합니다. 

  그러나 범단벌은 어느 특정인을 집단에서 소외시켜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형식은 왕따와 같지만, 왕따에서와 같은 음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따돌림이란 형식은 같지만 범달벌은 따돌림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게 하는 교정(矯正)에 목적을 둔 것이고, 왕따는 잘못의 여부와는 관련이 없이 특정인을 괴롭힐 목적으로 따돌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왕따는 따돌림이 은밀하게 자행되지만, 범단벌은 대중공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시행되는 점이 다릅니다. 

  지금은 학교나 직장은 물론 공동체를 영위하는 집단에서 구성원 모두는 개개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주적 인권의식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사소한 장난이나 놀림이라할지라도, 심지어는 무관심조차도 소외와 멸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당사자에게는 따돌림이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따는 소외와 멸시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봉건적인 수행전통이 남아있는 우리 승가에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생전에 재가불자의 신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던 수계은사의 다례재에 불원천리 찾았더니 승려중심 문도회의 재가 왕따로 절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불교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재가에 대한 소외와 멸시는 우리 불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왕따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여긴다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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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역죄 2021-09-15 06:33:15

    내장사 화재 범인은 출가한지 얼마안된 사미승이었다 하는데 불교의 제반 교육을 다 받고 비구계를 받고난 후에야 정식 승려가 됩니다. 교육을 다 받지 못한 사미승이 왕따 운운 자체가 모순이죠. 승려의 사회도 군대처럼 위계 질서가 있겠죠.그러니 불교에 갓 출가한 사미승이 자신대우 운운 하기 전에 자신을 낮추고 교육을 잘받아 훌륭한 승려가 되는 고민을 하지않고. 자신의 대우 운운 불만을 표현해서 대웅전에 화재를 놓았다고 하는건 부처님 법을 훼손한 오역죄에 해당 됩니다. 아는 사람 있는가 몰라 오역죄...불교의 옳고그름 신중하게 다루어야.   삭제

    • 양평촌놈 2021-09-14 19:45:19

      세상 살다보면 별일이 많지요. 왕따을 당했다고 부천님 대웅전에 불을 찌을까요. 그분인격이 잘못된것 입니다. 예전군대에서 구타나폭력 대단했지요. 그래도 일반병사들 사고치는 사람 별로 없서지요. 세상 살다보면 힘들때도 있고 왕따을 당할때도 있지요. 그래도 세상사람들 사고 않치고 잘들 살지요.   삭제

      • 자행 2021-09-13 21:11:00

        오늘날 한국불교,
        스님들이 너무 권위적이고
        사부대중이 평등하다고 하면서.
        권력 편중된 느낌입니다.   삭제

        • 최강길 2021-09-13 13:03:50

          왕따라는 것은 권위주의가 앞서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찬나비구는 석가세존과 친하다는 것이 앞선 권위주의가 앞서기 때문이겠지요. 불가에서는 권위주의가 굉장하지요.. 특히 계급을 주는 것이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구와 비구니를 가르는 것도 권위주의의 발상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모든 것은 연기법으로 보게 되면 평등한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발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속세에서 불이 태어나는 것이겠지요... 고맙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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