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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쳐다보지 말라
  • 박호석 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21.11.10 10:19
  • 댓글 2

 현존하는 생물 종(種)들은 각각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은 존재라는 것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이론입니다. 그래서 인류를 포함한 모든 종들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생존활동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처절하지만 어찌 보면 성스럽기도 하지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생물의 한 종인 인류도 살아가고 번식하는데 수반되는 본능적 행위들은 선악의 논의가 필요가 없는 아주 자연스런 생명현상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여타 생물 종들과 구분되는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과 감성을 지닌 존재로서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생명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감각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를 스스로 다스릴 줄 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를 잘 다스리고 절제할 줄 알아야만 자신도 행복하고, 또 세상이 평화롭다고 고금의 모든 성인들은 가르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본능적인 욕구들 가운데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것이 이성에 대한 성적 욕망이라고 합니다. 세존께서도 ‘나는 여자의 모습(소리, 냄새, 맛, 촉감)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어떤 대상도 보지 못했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앙굿따라니까야> ‘여자경’), ‘여자는 가나·서나·앉으나·누우나·웃거나·울거나·말하거나·노래할 때에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심지어는 병으로 몸이) 부어있거나 죽었더라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실 만큼 이를 크게 경계하셨습니다(<앙굿따라니까야> ‘모자경’). 또한 음욕(淫欲)을 즐기면 끝끝내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열반에 이를 수 없다고도 하셨지요.

  그리고 <디가니까야>의 ‘반열반대경’에는 세존께서 임종하시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난다 존자가 여인을 대처하는 법에 대하여 여쭈었던 것을 보면, 금욕이 수행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여인은 쳐다보지 말라, 이미 보았다면 말하지 말라, 이미 말했다면 사띠하라’고 하셨지요. 

  한편, ‘어떻게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가 묻는 것이냐’는 바라문 자눗쏘니의 물음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라문이여, 세상에 어떤 비구나 바라문이 완전히 청정한 삶을 선언하였을지라도 여인과 교합할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지압·세욕·안마를 즐기면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중략) 바라문이여,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생·노·병·사·우·비·고·뇌를 벗어날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앙굿따라니까야> ‘성적교섭경’)
                                       
  나아가 부처님은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눈을 마주보거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담장너머 들려오는 여인의 웃음·이야기·노래·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과거에 여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유희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유혹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쾌락에 빠진다’고 하셨지요. 

  불교에서 불사음계는 재가자도 일정수준 지켜야하는 계율이지만, 출가 사문에게는 그 욕구의 뿌리까지 완전하게 제거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마치 종려나무를 뿌리까지 캐서 말리고 태운 다음, 그 재조차도 흔적 없이 날려 버리듯. 그래야만 궁극의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출가수행자가 이성을 멀리해야 하고, 독신이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이를 지키지 못하면 바라이 죄로 추방하는 것이 승가의 계율입니다. 

스님들이 탁발하는 모습.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그런데 요즈음 한국불교에서는 이처럼 엄중한 불사음계에 대하여 많은 불자들이 아주 관대한 태도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를 두는 것을 아예 문제 삼지 않는 종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종파는 출가 이후에는 독신을 유지해야 함에도 속가 출입이 용납되기도 합니다. 또 세속의 법으로까지 독신을 요구하는 종파의 승려가 몰래 처자를 숨겨두는 경우가 있어서 은처자(隱妻子)라는 말이 통용되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사회법으로까지 심판을 받은 성범죄 전과자를 종단의 대표로 추대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도 불자들은 그러려니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매춘부·과부·처녀·동성애자·비구니의 처소에 자주 들락거리는 비구는 의심스럽고 신뢰할 수 없으며, 설령 그가 부동(不動)의 법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타락한 비구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앙굿다라니까야> ‘신뢰 없음 경’). 이는 아무리 수행과 위가 높다 하라도 이성간의 문제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부처님의 지엄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불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를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은 청정승가를 욕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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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요 2021-11-11 11:36:13

    잘 읽었습니다
    요즈음 못난 승려 망나니 짓은 제외하더라도
    경에서 이르신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도 유효 하다 보는지요?
    시대에 맞는 의미 살리기는 없을까요?   삭제

    • 최강길 2021-11-10 12:57:34

      집착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겠지요... 엄밀히 따진다면 연기법도 집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래서 12연기도 집착으로 이루어진것이고, 사문들에게 엄격한 계율을 적용하는 것은 부처님법을 중생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집착이 없는 사문이 해야 하겠지요... 고맙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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