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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에서 시작된 나의 공부
  • 유기쁨 서울대학교 강사_불교포커스
  • 승인 2021.11.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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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사진출처 : 유기쁨 서울대학교 강사)

누군가를 감동시켜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나무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길을 막는 녹색 물체일 뿐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1. 어떤 날의 이야기

내가 우리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호두나무 아래였다. 우리집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성하게 자라는 커다란 호두나무였다. 호두나무는 보통 볼 수 있는 호두나무보다 아주 큰 나무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우리집 호두나무가 보였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언제나 호두나무는 멋졌다. 우리집은 호두나무집이었다.  

작년 이맘때 지역 어른 한 분이 우리집에 오셨다.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짠 검은깨 참기름과 키위 두 자루, 시금치 한 망을 가져다 주셨고, 유자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분은 갑자기 이제 일해야지 하고 일어나더니 톱을 가지고 호두나무로 다가가셨다. 우리집 호두나무가 너무 왕성하게 자라서 전선들을 건드리고 있어서 바람 부는 날에는 늘 불안했었다. 톱 들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그분을 보고 우리가 차마 못하고 있던 호두나무 가지치기를 해주신다고 생각했다. 잠시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집안에 들어갔다가 마당에 다시 나가보니... 호두나무 가지들이 완전히 다 잘려나가고 없었다. 호두나무가 없어졌다. 밑둥만 덩그러니, 잘려나간 허벅지처럼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잘려나간 팔다리 같은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산처럼 가득했다. 밑둥까지 베어내려는 것을 겨우 말리고 어떻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잔해들, 잘려나간 몸통들을, 비어버린 자리들을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한동안, 실은 상당히 오랫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 잔해, 폐허의 사유

호두나무에 대해서 몇 년 동안 되풀이해서 들은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인데, 우리집 호두나무는 쓸모가 없다는 것, 그리고 집안에 사람 키보다 더 큰 나무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호두나무 말고도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큰 나무들이 여럿인데 유독 호두나무가 자주 거론된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여겨진 까닭이 클 것이다.

우리집 호두나무에는 열매가 굉장히 많이 열렸지만 인간이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는데, 껍질이 너무나 단단해서 망치로도 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느 네스(Arne Naess)가 제안한 심층생태학(Deep Ecology) 8대 강령의 첫 번째 원칙은 모든 생명은 (인간에게 유용한가 여부와 무관하게)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원칙을 적용해서 호두나무의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여기 시골마을 어른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나무의 가치와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사실 나무의 쓸모라는 것 자체가 모호한 개념인 것 같다. 인간을 위한 유용성만 따져 봐도, 호두나무의 '쓸모'라는 것은 열매에 한정되지 않는다. 토양 속에서 뿌리를 통해 일어나는 영양소 순환이나 잎에서 일어나는 광합성 작용 등 식물의 기본적인 작용면에서 호두나무가 인간의 삶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은 적지 않다.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에서 호두나무가 주는 안정감과 호두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장소감은 이른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합리적으로' 고려하려는 생태계서비스 논의에서조차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한 기능으로 다루어진다.  

한편, '사람 키보다 더 큰 나무가 집에 있으면 안 된다'는 민간의 암묵적 규칙을 마주하고서, 나는 식물에 대한 차별적 태도 및 이와 관련된 관습적 규정의 차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 맺음의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유형이 눈에 들어왔다. 식물을 동물이 이용하기 위한 자원으로 또한 일종의 배경으로 여기는 경우는 논외로 하더라도, 식물의 생명성을 민감하게 인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생활방식이나 생활속에서 작동하는 암묵적 규정 등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식물의 생명성에 민감한 몇몇 소규모 공동체들을 염두에 두고, 각각의 존재론적 특징과 식물 이용 방식 등을 고려해서 크게 네 가지 이념형(Idealtypus)으로 분류를 시도해보았다. 첫째로, 모든 식물은 살아있고 의도와 감각과 잠재적 능력행위를 가진 행위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그래서 인간 생활을 위해 식물 생명을 이용하려면 식물의 허락을 구하는 의례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 둘째로, 모든 식물의 생명성을 인지하지만 그 중에서 일부 식물의 성스러운 영향력에 좀 더 차별적으로 집중해서 일부 식물(가령 당나무)에 대한 접근을 금기시하는 경우, 셋째로, 식물이 우주의 모든 요소와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연결성을 식물 재배에 적극 활용하는 경우, 넷째로, 모든 식물에게 일종의 영혼이 있다고 여기면서도 인간의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식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각각을 유형화하고 인간이 식물을 인식하는 방식(분류체계), 식물의 감응력과 행위능력에 대한 이해, 식물과 인간의 호혜적 상호작용에 대한 인지, 식물 이용 범위 및 관련된 금기, 식물과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문화적 표현(의례와 관습) 등을 중장기적으로 비교해서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3. 다시 자라나는 힘

다시 호두나무로 돌아가자. 한동안 덩그러니 남은 호두나무 둥치에서는 베어진 자리마다 눈물처럼 물이 흘렀고, 곰팡이가 핀 듯 보이는 곳도 생겼다. 휑한 마음으로 겨울을 났다. 그런데 어느 봄날 호두나무 둥치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몸통에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한 열흘이 지나자 곳곳에서 싹이 올라왔다. 일단 올라온 싹들은 뭔가를 만회하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왔다. 여름에 태풍의 비바람으로 너무 웃자란 가지들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이 무성해졌다. 하도 빠른 속도로 자라느라 그런지 아무래도 병충해에도 취약해진 것 같고 예전의 위풍당당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주어 고맙기만 하다.

한편, 호두나무의 생육이 왕성하던 시절에는 호두나무 그늘 밑에서 거의 모든 나무와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호두나무 홀로 우뚝 서있었다. 그런데 5월의 어느 날, 나는 탄성을 질렀다. 호두나무 둥치 곁에서 엄청난 기세로 올라온 광나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광나무 씨가 떨어져서 자연발아한 것 같다. 아마 호두나무가 왕성하던 시절에는 기를 못 펴고 있다가 호두나무가 거의 죽어가는 듯하자 마치 틈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한두 해 전에 우리가 마당 다른 곳에 심은 광나무 묘목들은 더디게 자라서 아직 자그마한데, 호두나무가 왕성하던 시절에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던 광나무가 갑자기 2미터 이상 솟아올라서 나를 놀라게 했다. 호두나무는 인접한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기 위해 뿌리에서 이차대사물질을 분비하는 타감작용(allelopathy)이 활발한 대표적 나무 중 하나이다. 우리집 광나무는 호두나무의 타감작용이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성장한 것 같다.

광나무와 호두나무는 한동안 미친 듯이 경쟁하더니 결국 호두나무가 더 높이 올라와있다. 그렇지만 광나무도 호두나무가 기세를 회복하기 전에 (타감작용이 왕성해지기 전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렇게 광나무와 호두나무의 공존이 시작된 것이다.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호두나무의 생명력 및 주변 나무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목격한 셈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루는 생태(生態)학에서는 살아있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상호작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인간이 비인간 자연과, 특히 식물과 연결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식물의 생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에 대한 문화적·종교적 표현을 생태학적 시선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을 통해, 생태계 내에서 인간의 자리를 다시 숙고하고, 인류세 시대에 식물과 인간의 공생(共生)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호두나무가 내게 제시해준 과제인 것 같다.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704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은이 유기쁨 서울대학교 강사의 저서로는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원시문화 1권, 2권'(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아카넷, 2018),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3권'(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아카넷, 2012), '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논형, 2013)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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