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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폭력적 변주(變奏)
  • 이혜숙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_불교포커스
  • 승인 2021.11.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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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이혜숙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

COVID-19 탓에 너나없이 사회생활을 가능한 한 소극적으로 유지해왔을 터이다. 필자 역시 서울을 벗어나 살면서 2년째 서울 도심에 들어가는 일을 대폭 줄이고 납작 엎드려 살고 있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었는지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덕택으로" 새삼 깨우쳐지는 바가 생겨났다. 널리 공개될 이 글에 코로나 "덕택으로"라는 표현을 써넣어도 될지 말지, 솔직히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왜냐면, 우리 동네만 보더라도 평범한 상권의 가게들이 상당수 문을 닫았는데 거기서 생업에 종사하던 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코로나 덕택이란 게 도대체 '뭔 소리냐' 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덕택"이라니 도대체 뭔 소리인가 하면, 새삼스레 사람이 그립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에도 끊임없이 문자로 일을 이야기하거나 때때로 영상으로 회의도 하곤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가 않더라는 사실이다. 사람끼리 음성 톤(tone)과 표정과 몸짓을 읽고 전체 모양새를 살펴봐야 서로 통(通)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과거에 어떤 일거리들을 도모하던 때에 내가 상대방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건성건성 함께 하진 않았을까 싶어서, 후회가 되기도 했다. 또, 늘상 지나다니면서도 별로 관심이 없던 동네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을 하루속히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일도 없이 오로지,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과 서로 얼굴 보며 안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마침내 서울 나들이를 결심하였다. 몇몇 지인에게 내가 불쑥 전화를 걸었는데 마치 기다린 듯 반가운 응대를 해주니 더욱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실로 오랜만의 회동이 이루어졌다. 연애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만나기로 한 사람을 그토록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적이 내 기억에는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다. 약속 장소에 이르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신호대기 중인 짧은 시간에도 너무 반가워서 피차 애들처럼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코로나 덕택에,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인연(因緣)이라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된 셈이 아닌가.  

 도대체 얼마만이냐, 잘 지냈느냐 등등 그리고는 이전에 함께 활동하던 이야기에 이르러서, 훈훈하던 후배 C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내게 말했다.

  C : 그때 선배는 왜 그렇게 내가 하는 일마다 반대를 하셨어요? 선배의 지적이 옳기도  하였겠지만, 선배는 늘~~ 투사(鬪士) 같고 전사(戰士) 같았어욧!!
  나 :  내가 투사 같았다고?
  C  :  선배 주장이 요리조리 견고해서 도무지 딴소리를 할 수도 없으니, 나는 무~지 힘들었죠!!
  나 :  내가 그래야 할 맥락이 있었을 텐데.... 어쨌든지 내가 투사처럼 굴어서 고생했구나 ㅠㅠ

 COVID-19 2년차의 격리(隔離)가 워낙 답답하던 참이었으니 후배의 솔직한 쓴소리까지도 그 자리에서는 그저 달달하게 들리기만 했는데, 그날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후배의 그 지적은 상당히 옳다고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 나의 논리는 시시비비(是是非非)에 투철(?)하고자 온갖 무장을 하고 방어를 한다. 나의 가방끈이 나름대로 길어서 이런저런 근거를 주워대며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단단히 준비하였으므로, 누구라도 웬만한 각오가 아니면 내 주장을 보완하거나 바로잡아 주려고 나서기가 싫었을 것 같다. 상대방의 뜻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너무 얄팍하고 일방적으로 내 소신(所信)만 강하게 퍼붓는, 그런 나의 태도로 인해서 그간의 여러 상대방이 얼마나 불편하였을까. '옳고 그름'에 관한 나의 고집스런 믿음이 폭력적으로 변주됨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참에 오랜만에 만나서 더 진솔하고 돈독해진 우의(友誼)가 후배로 하여금 나의 고질(痼疾)을 깨우쳐 주게 한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도, 상대방을 부정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소신이 타인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들어온 길거리 선교용 멘트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그러하고, 종교광장 · 정치광장에서 열린 각종 대형집회의 확성기 구호들이 그러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하고도 올바른 사람의 일자리여야 할 대통령직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각자의 소신을 다투는 모양새를 보면, 폭력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쩍 늘어난 동네 개들이 몰려다니며 짖는 소리처럼 시끄러운 정치판 선거싸움이 매우 볼썽사납다. 토론에서나 연설에서나 자세히 살펴야 할 국민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짧고, 정치인이 서로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는 게 재주인 양 자기네끼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패싸움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런 난투극을 계속해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일반대중의 피로감이 팽창하게 된다.

 우리 대부분의 국민은 언론매체가 비추어주는 대통령 후보자들의 이미지만 보게 될 터인데, 애석하게도 여지껏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덕성스런 기품(氣品)이 별로 느껴지지 않은 까닭은 모두가 신념이 확고한 싸움꾼을 자처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란 본래 다투기만 하는 일이 아닐진대, 작금의 정치판은 왜 이렇게 돌아갈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각 당의 대통령 후보자들이 개신교인 혹은 가톨릭교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믿음의 덕성과 공능(功能)이 과연 어느 대목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부디 폭력적이지 않은 태도를 갖추고, 피차가 지향하는 가치[옳은 것]에 대하여 서로간의 이해를 구하고, 결국에는 대중의 복리(福利)를 위해서 화쟁(和諍/和爭)하는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면 좋겠다. 당장은 무엇보다도 COVID-19로 고통 받는 대중을 최우선으로 챙겨할 때인 만큼, 공허한 말의 잔치로 과시하지 말고 소용없는 원칙을 세우느라 때 놓치지 말고, 오로지 대중의 삶에 근거하여 합당한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껏 백면서생(白面書生)인 필자 주제에도 하릴없이 나돌아 다니며 분주했던 그동안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코로나 기습이 있기 전까지 나는 무엇인가로 사뭇 바쁜 척, 시선은 늘 멀리 허공에 두고 아무래도 뜬구름 잡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근년에 동네의 많은 가게 문이 닫힌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니 비로소 그 이웃들의 살림이 구체적인 걱정으로 다가왔다. 당장 식솔(食率)의 생계는 어떻게들 도모할까, 어느 누가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주고 있을까. 영업이 중단된 점포들의 어둠을 볼 때마다 이 마음도 어두워지는데 나로서는 어떻게 도울 재간이 없으니, 그저 숨죽이고 지나갈 뿐이다.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705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은이 이혜숙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 겸 전 동국대 겸임교수의 논문으로는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한국 종교계의 정치적 이념성향 연구를 위한 제언', '시민사회 공론장 확립을 위한 불교계 역할',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고, 저서로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공저), '임상사회복지이론'(공저),'종교사회복지'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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