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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부사의업상
  • 박호석 (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21.12.18 08:59
  • 댓글 2

  <대승기신론>에서 본각(本覺)에서 발현되는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은 밝은 지혜로 지어지는 모든 경계가 뛰어나기 때문에, 중생의 근기에 상응하여 끊임없이 발현되는 무량한 공덕으로 중생을 이익이 되게 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무량한 공덕이 끊임없이 발현된다는 것은 모든 행위 그 자체가 바로 부사의한 업이라는 뜻이니, 부처님의 하루하루의 일상이 우리 범부들의 생각으로는 미치기 어려운 무량공덕의 모습이란 것이지요. 부처님이 하늘세계에 나투시고, 중생의 과거 전생을 낱낱이 알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등의 초인적인 능력만 부사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의 일상에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부사의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쌍윳따니까야>의 경전과 해제(전재성 역)를 통해 간추린 세존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획일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오전4시에 기상하시면 두 시간 정도 선정과 명상을 하고, 6시가 되면 제자들과 함께 마을로 탁발을 나가십니다. 그리고 탁발 음식을 가지고 정사로 돌아오면 대중들과 함께 공양하시면서 정오까지 대중공사와 간단한 설법을 하시지요. 오후에는 주로 찾아오는 재가자들을 가르치거나, 이곳저곳에 흩어져 수행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공부를 점검하시면서, 그들이 아프지는 않은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보살피십니다. 그리고 피곤하시면 잠시 쉬시거나 낮잠을 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오후 6시인 초저녁이 되면 출가제자들의 공부를 지도하시고, 한밤에는 하늘세상의 신(神)들을 만나 법담을 나누십니다. 천신들이 물러가면 경행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신다음,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잠을 청하십니다. 그러니 하루 수면이래야 기껏 1시간인 셈. 

스님들이 탁발하는 모습.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선정과 명상 때에는 열반의 행복을 누리시고, 세상의 모든 유정(有情)들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내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신통으로 통찰하시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나투시어 도움을 주기도 하시지요. 이처럼 부처님은 한시도 허튼 시간이 없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중생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빈틈없는 일과를 보내십니다. 80세의 노구에도 날마다 맨발로 일곱 집을 도는 탁발을 거르지 않으시고, 임종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법을 그치지 않으신 부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생각으로 미칠 수없는 부사의업을 확인합니다.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비데하를 유행하실 때, 나이가 120세였던 바라문 브리흐마유가 사끼야족의 고따마 존자가 명지와 덕행을 갖추신 분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젊은 제자 웃따라를 보내 일곱 달 동안 부처님을 따라다니며 관찰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수록된 <맛지마니까야> ‘브라흐마유 경’에는 부처님은 어떻게 생기셨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몸가짐은 어땠는지 등의 일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지요. 그 가운데 일부분이지만, 이것이 우리 스승의 진짜 모습이자 바로 우리가 대승(大乘)의 마음을 내었을 때 발현되는 부사의업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존자 고따마가 걸을 때는 오른 발을 먼저 내딛고, 보폭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고, 너무 빠르거나 느리게 걷지 않고, 무릎끼리 부딪거나 복사뼈를 부딪지도 않습니다.

 또한 존자 고따마가 바라볼 때에는 온몸으로 바라보되 위로 치켜보거나 아래로 내려 보지도 않고,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 멍에의 폭만큼만 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장애 없는 앎과 봄을 성취합니다. 

  존자 고따마가 물을 받을 때에는 그릇을 쳐들거나 밑으로 두거나 앞으로 기울이거나 뒤로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는 그릇에 물을 너무 조금 받거나 많이 받지 않습니다. 그는 소리를 내며 그릇을 씻거나 돌리면서 씻지 않고, 또 그릇을 바닥에 두고 손을 씻지 않습니다. 그가 손을 씻으면 그릇이 씻어지고, 그릇을 씻으면 손이 씻어집니다. 그는 그릇 씻은 물을 버리되 너무 멀리 버리지도 가까이 버리지도 않고 주변에 흘리지도 않습니다.

  그가 음식을 섭취할 때에는 여덟 가지 요소를 갖춥니다.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취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몸을 유지하고 연명하고 상해를 피하고 청정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하며, 이와 같이 ‘나는 예전의 괴로움을 끊고 새로운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으며, 건강하고 허물없이 안온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식사를 끝내고 잠시 침묵하지만 감사의 시간을 놓치지는 않습니다. 그가 식사를 끝내고 감사를 표할 때에 음식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고, 다른 음식을 요구하지도 않고, 반드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훈계하고 교화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는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훈계하고 교화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존자 고따마는 몸에 옷을 걸칠 때, 너무 높거나 낮게 걸치지 않고, 너무 꽉 끼거나 헐렁하게 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옷을 나부낄 정도로 걸치지도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가 승원에 들어가면, 마련된 자리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그는 두 발을 씻지만 치장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는 두 발을 씻고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펴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앉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과 남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과 남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앉습니다. 존자 고따마는 자신과 남의 유익함을 생각하고, 자신과 남, 그리고 온 세상의 유익함을 생각하며 앉습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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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세 2021-12-19 07:20:15

    중같지않은중
    그것이 ㅅ일상인것 같은 세상
    그게 말세죠   삭제

    • 최강길 2021-12-18 18:46:18

      정말로 석가세존께서는 한순간도 방일하지 않으신 것이지요... 방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것이겠지요... 항상 깨어있다는 것은 모든 것들을 연기로 보시기 때문에 깨어있을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하기 때문에 잠도 적게 주무실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진정으로 깨어있다면 잠이라는 것의 효용성에서 알 수 있듯이 정신이 피곤해도 잠을 자야 하고 육체가 피로하여도 잠을 자야 하겠지요... 그러나 석가세존께서는 정신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으시고, 육체는 선정으로 풀어버리시니까 그렇게 하실 수가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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