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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세와 인권
  •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_불교포커스
  • 승인 2022.01.13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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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무수한 공약을 쏟아 내며 표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후보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언제든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후보들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종교계다. 앞다투어 교회, 사찰, 성당을 찾고 예배, 법회, 미사에 참석한다. 물론 종교지도자와의 만남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종교지도자가 의례적 차원의 덕담과 함께 교계의 고충이나 숙원사업을 은근히 내비치면 대선 후보는 흔쾌히 문제 해결을 약속한다. 막대한 조직표를 지닌 종교계의 지지를 얻으려는 대선후보의 욕망과 차기 최고 권력자와의 친분을 확보하려는 종교지도자의 욕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번 대선에서 종교와 정치의 접속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필자의 눈에 띈 것은 둘이다. 하나는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법 논쟁이다. 전자는 불교계와 연관되어 있고 후자는 주로 개신교계와 관련되어 있다.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된 논란은 국정감사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국립공원 내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등산객에게 요금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하였다. 이 발언에 격분한 불교계가 공개 사과를 요청했지만 그가 거부하자 조계종은 민주당에 정 의원의 출당조치를 요구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민주당 지도부가 나서고 대선 후보가 조계종을 찾아가 대신 사과하였다. 당내의 압박을 받은 듯 정청래 의원도 뒤늦게 사과하려고 조계종을 찾아갔으나 문전박대 당하고 말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문제는 요즈음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해묵은 사안이다. 1962년 일부 사찰이 문화재관리법에 근거하여 관람료를 징수하기 시작하였고 1967년 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공원 안에 있던 사찰 소유지도 편입되었다. 1970년 국립공원에서 입장료를 받으면서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도 받는 합동 징수가 시작되었고,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면서 관람료 문제가 불거졌다. 사찰이 산 입구에 있는 기존의 매표소에서 관람료를 받다보니 문화재를 볼 의사가 없는 등산객들이 관람료 징수에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매표소 위치를 산 입구에서 절 입구로 옮기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주장에 대해 사찰 측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서양은 그림이나 건축 한 점 한 점을 문화재로 보지만 한국 산사는 사찰뿐만 아니라 그 주변 숲 계곡 암벽 산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가람을 이룬다는 논리다. 현재 사찰 측이 '문화재 관람료'라는 기존 명칭 대신 '문화재구역 입장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관람료(입장료)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의 배후에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 이후 종교-문화 이분법의 탄생, 불교의 사회적 존재방식 변화, 문화재의 공공성과 종교시설로서의 사찰 등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다. 문외한인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정부와 불교계이며 '시민의 복지 증진'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현재 불교계는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통행세'에 비유한 국회의원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항의집회(전국승려대회)를 열겠다고 정부(여당)를 겁박하고 있고, 정부는 여당 대선 후보가 조계종을 방문하여 급한 불을 끄기에 바쁘다. 복잡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종교계에 상대적으로 힘이 실리는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에 대한 압박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종교권력의 몸짓, 그리고 종교계의 표가 무서워 자세를 낮추는 정치권의 모습이 포착될 뿐이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논란은 여당 대선 후보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한교총의 인사들이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여당 대선 후보는 “당면한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한 사안이라면 모르겠지만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하는 방향을 정하는 지침 같은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놓고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원래 여당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사회적 합의의 부족'을 내세워 후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 나중에? 대통령도 나중에 하라”고 비판했으며 심지어 기존 입장의 번복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사실 이 이슈도, 사찰 문화재 관람료의 경우처럼,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동안 논란을 빚어온 사안이다. 2007년 처음 발의된 이래 17대, 18대,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발의되었으나 보수 개신교계의 저항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21대 국회인 현 국회에도 4개의 차별금지법안이 올라와 있으나 보수 개신교계를 의식한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 보수 진영은 차별금지법안에 포함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이유로 이 법안을 동성애 옹호 법안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반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를 결성하여 보수 개신교 진영과 대결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논쟁의 핵심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다. 개신교 보수 진영은 젠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성애 중심주의(heteronormativity)에 입각하여 동성애를 인권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다. 동성애의 비인권화를 통한 성소수자의 배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표를 내세우며 개신교 종교권력이 구사하는 이러한 타자화 전략에 정치권력이 굴복하고 있는 광경이 현 대선 정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종교와 정치의 접속 양상이다.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문제와 차별금지법 문제는 서로 다른 사안으로 보이지만 대선 국면에서는 나름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권력은 표를 내세워 정치권을 압박하면서 기득권의 확보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고화를 추구하는 반면, 정치권력은 집권에 필요한 종교계의 표를 얻기 위해 종교권력의 요구에 순응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접합은 시민의 복지와 소수자의 인권을 신장하기보다는 억압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쉽다.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712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은이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의 주요 저서로는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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